아름다운가정

때를 분별한다는 것!

먹을 때, 잘 때, 감사할 때, 회개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민 14:40


이런 이스라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런 태도는 부모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반항하는 자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어떤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밤낮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했다. 그럴 때 부모라면 아이를 야단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아이가 부모의 진심은 외면한 채 부모에게 야단맞았다는 것과 컴퓨터 게임을 못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만 주목해서 부모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면 이후 어떻게 행동할까?


자기 방에 들어가 종일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 것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밥 먹으라고 해도 꼼짝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부모를 향한 반항심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럴 때 부모에게 그 아이의 행동이 예뻐 보이겠는가, 아니면 컴퓨터 게임을 할 때보다 더 악하고 미워 보이겠는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바로 그런 오기로 왜곡된 행동을 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행동에 들어갔다. 너무도 악한 행동이다. 하나님은 광야 길로 돌이키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야 가나안으로 올라가겠다며 보란 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향했다. 저들의 오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민 14:40


이들의 태도는 밥때를 거르면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시위하는 뿔난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했다면서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정말 몰랐을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분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들이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20세 이상 된 자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없다고까지 하셨다.


이제 그들에게 허락하신 곳은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다. 물론 한때는, 아니 얼마 전까지는 가나안이 그들에게 허락된 축복의 땅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아니다.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면 40년이 지나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라는 회개의 탈을 쓴 채 막무가내로 산을 향해 진격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그들이 정말 마음을 찢어 회개했다면 감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어떻게 그들 자의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해 끝까지 저항하고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 뭐래요? 잘못했다니까요!”라며 오기 부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본문의 이스라엘 위로 겹쳐 보인다.


믿음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정한 때를 보게 하는 능력이다. 말씀하신 때를 놓치고 난 뒤에야 “아,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라고 혈기 부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이가봇의 모습이요 이가봇의 특징이다. 마음속 진실은 외면하고 겉껍데기만 하나님께 드리는 척하는 거짓된 모습에서 하루속히 돌이켜야 한다.

<광야에서 만나는 하나님> 이제훈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부모가 하면 잔소리라는 말이 있다. 무조건 부모의 말에 귀를 막고 나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 듣는다면 그 결과에 상관 없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가운데 깊은 신뢰가 회복될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주님과 친밀함이 더욱 커지는것처럼 말이다. 왜 나에게 말씀하지 않으시냐고! 왜 나에게는 이리 힘들게 하시냐고 하기 전에 주님 내가 회개함으로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주앞에 나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