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ㆍ문화
아름다운가정

오로지 무력한 자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녀의 문제 앞에 무력해지는 부모일지라도 오로지 무력한 자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말처럼 자녀를 주님께 올려드려봅니다.
주님 내 아이를 만나주시고 그 아이가 주님안에서 바로 서게 해주세요.

어젯밤, ‘큰아들 방을 노크해 볼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오후 4시쯤인가 피곤하다며 낮잠을 자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간 이후 밤늦은 시간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은 아들이 걱정되어서였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며칠째 저녁도 거르고 있었기에, 이 아들이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인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방문을 한번 두들겨 보면 확인할 수 있지만,뭔가 불안한 엄마의 심리 상태로 아들 방문을 노크하는 일의 뒤끝은 항상 좋지 않았습니다.
“모처럼 자는데 왜 깨워요?”라는 말을 들을 확률이 컸습니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불안한 제 마음을 못 이겨 아들 방을 살짝 노크해봤을 겁니다.

낮부터 그때까지 잠을 잔다면 필경 새벽 두어 시에 깨어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룰 테고, 그러면 수면 리듬이 깨져 며칠 까칠하게 살 것이라는 계산으로 아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자식을 포함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기로 결심한 터였습니다.
그것은 곧, 내 생각과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께 아뢰고 구하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다리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바라보든 제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하나님만이 그들 인생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저는 성급하게 행동하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가서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할 때 제 영혼은 염려 대신 안식을 누리기도 합니다.

밤10시. 주님 안에 안긴 채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10년 넘게 해결되지 않았던 이 아들의 수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길 구했습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잠자는 것을 아까워하고 그래서 잠들기가 어려운 이 아들이 오늘은 아침까지 모든 긴장을 풀고 푹 잘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일은 맑고 상쾌한 모습으로 하루를 지내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저도 평안히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인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7시 즈음에 큰아들이 방에서 나옵니다.
“엄마, 어제 7시에 잤는데 무려 12시간을 내리 잤어요.”
그 말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초저녁에 잠들어서 아침까지 자는 일은 이 아들에게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덤덤히 반응했습니다.
“그래? 잘했네. 푹 자서 다행이다.”
“잠 많이 자서 칭찬받아보긴 처음이에요.”

아들은 내리 12시간을 자서인지 다른 때보다 더욱 컨디션이 좋아 보였습니다. 종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공모전 준비에도 열심입니다. 그러다 오후 4시쯤, 제 작업실로 와서 여러 아이디어를 쏟아놓습니다. 아들은 요즘 청년답게 예리하고 창의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50대인 엄마가 못 알아듣는 내용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라도 열심히 끄덕여줍니다. 그러자 이 아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엄마한테 자꾸 와서 방해하게 되네요. 친구가 없어서 그런 건데, 이제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생활이나 유학생활도 그려보게 되고요. 제 상태가 조금씩 그게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영어에 좀 귀가 트이는 것 같아서 밖에 나가 외국인을 만나 말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제 조금씩 노력해볼게요.”

밝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보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몇 달째 집에서만 칩거 중인 아들에게서 나온 그 말은 하나님께만 올려드렸던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믿어졌으니까요.

물론 아들이 그 말을 했다고 해서 당장 행동화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제가 한 마디 뻥긋하지 않았음에도 아들의 입에서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아들이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그런 삶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나님께서 이 아들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했던 시간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기도로’라는 말. 오랫동안 제 삶에 끌어오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기도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제힘으로, 제 말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힘에 기댄 열심으로 살다 보니 결국 찾아드는 것은 무력감뿐이었습니다 내 안에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 앞에 다다랐지요.€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심으로 엎드려야 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을 바라며 오직 기도로만 해결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 그렇게 저는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에서야 “오로지 무력한 자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라는 오 할레스비(Ole Hallesby)의 말뜻을 알아듣고, 자식의 일이든 교회의 일이든 민족의 일이든 오직 기도로 해결하려고 씨름하듯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니,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제라도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제게 기도를 통해 모든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분이심을 알게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다시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주님만 붙들겠습니다.€
<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한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