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땅이 이야기_박성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우리교회 주일 오후 찬양예배 시간에는

비교되는 모습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앞에서 찬양을 하는 어린 소녀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항상 맨 앞 줄 에 앉는 신사입니다

소녀는 찬양시간내내 방방 뛰고, 율동을 하고, 박수를 치며 찬양을 합니다
신사는 찬양시간 내내 다리를 꼬고 앉아있습니다

소녀는 '부르신 곳에서'와 같은 새로운 찬양이든,
'오주여 나의 마음이'와 같은 예전 복음성가이든 입을 크게 크게 벌리며 신나게 부릅니다
신사는 아는 찬송가가 아니면 절대 입을 열지 않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찬송가가 몇곡이나 되는데 큰일입니다

소녀는 찬양을 하며 손을 들기도 하고, 눈을 감기도 합니다
신사는 눈만 감습니다 질끈.

소녀는 오늘도 다른 친구들 처럼 독서실에 가지 않고 찬양팀을 한다고 부모님께 혼이 날지도 모릅니다
신사는 오늘도 어른들 아는 찬송가 위주로 하지 않는다고 찬양팀을 혼낼지도 모릅니다

소녀는 오늘도 자신의 찬양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신사는 오늘도 자신과 달리 품위없고 이해할수 없는 찬양팀을 바라봅니다

소녀는 아직 중학교 3학년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고, 그분을 찬양하는게 너무 좋아서
어른예배에 어른들이 서는 찬양팀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사는 교회에서 모든 일에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어른입니다

누구의 찬양이 옳고 그르다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건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교회에 찬양시간에 언제나 볼 수 있는 이 모습을 보며
찬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찬양이 무엇이라 알고 있습니까

찬양은 흔히 곡조가 붙은 기도라고 말합니다
또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나는 찬양을 할 때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 그분을 높여드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기분을 높이는데에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드리는 찬양은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떤 모습일까요
내가 하는 찬양을 내가 받는다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것 같습니까
기분이 좋고 행복할까요
아니면 손발이 오그라 들까요

그리고 온 맘다해 찬양을 드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광(빛 광이 아닙니다)신도라고, 너무 오버한다고, 왜저래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물론 같이 찬양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잘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찬양의 열기가 끝난 후 눈물, 콧물 .. 마스카라.. 검은 눈물..
서로 쳐다보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뭐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실
하지만 그것을 멀리서 보며 손가락 질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겁니다
혼자 드라마를 보다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핀잔을 주듯
찬양을 하며 울고 웃는 사람을 보며 핀잔을 주는 건 핀잔 받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낱 드라마도 보다보면 주인공과 감정이 나눠지고
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이 내 것인 양 한데,
창조주이신 분을 노래하며, 그분과 감정을 나누고, 그분의 위로를 듣고,
그 분의 위대하심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내가 왈가왈부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은 수 많은 전투에서 수 많은 피를 보았던 거친 군인이면서도
수금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마음을 울리는 노랫말을 적는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고 7년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제 막 통일왕이 된 다윗,
그리고 주변 강대국과 싸워 승승장구하고 있는 다윗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부르는 궤.
그것을 자신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자신보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기를 즐거워하는 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법궤를 아무데나 방치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바쁘고 새롭게 할 일이 많은 와중에도 삼 만명을 뽑아 법궤를 모시러 갔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고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제사장이 메고 가야 된다는 것을 몰랐던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그 후 3달 뒤에 다윗은 다시 도전을 하게 됩니다.
이번엔 다행히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고 운반을 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 움직입니다.
여섯 발짝을 움직이자 다윗은 너무 기쁜 나머지 살진 소와 송아지를 잡아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소리치며 기뻐했습니다.
성으로 법궤를 가지고 들어가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다윗은 그 곳에 서서 거룩한 베 에봇이 벗겨지도록 춤을 추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았습니다.

이때 이 모습을 창에서 지켜 보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격있게 자라난 말그대로 공주, 미갈이었습니다.
미갈은 자신의 남편 다윗이 격없이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모습이 하찮았습니다.
그리고 깔보았습니다.

모든 예배와 축제가 끝이 나고 다윗이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니나 다를까 미갈이 다윗을 마중 나왔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왕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군요. 당신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바보같았어요.”

미갈의 냉소에 다윗은 오히려 미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 보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한거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해주시고 높여주셨는지 나는 잘 알기 때문이요.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체면을 잃는 일이 또 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되고 싶소.
그리고 나는 언제나 여호와 앞에서 뛰어놀것이오.“

나는 누구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잘못되었는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이 죽어서도 지금까지 그를 높여주시고 계십니다

누가볼 때 찬양하는 내 모습이 진상이든 진국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겁니다
내가 조용히 찬양하든 방방뛰면 찬양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겁니다
내가 마땅히 찬양해야할 그 분을 향한 내 마음이 진심인가를 볼 수 있어야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 작은 찬양받기 위해서 날 만드셨다는 그 분께서

그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땅이 이야기 _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