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구약

38. 학개 : 제2성전 건축

학개 선지자는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제1차 포로 귀환 시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레위 사람입니다.

학개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뿐 아니라 포로에서 귀환한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학개서를 기록한 제일 큰 목적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다시 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전에 성전 건축을 시도하다가 여러 가지 반대에 부딪히면서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구성

학개서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네 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고, 말씀을 전한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첫 번째 메시지(1:1-15) B.C.520년 6월 1일, 일어나 성전을 지으라
● 두 번째 메시지(2:1-9) B.C.520년 7월 21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 세 번째 메시지(2:10-19) B.C.520년 9월 24일, 오늘부터 내가 복을 주리라
● 네 번째 메시지(2:20-23) B.C.520년 9월 24일, 내가 너를 취하고 인장으로 삼으리라(스룹바벨에 대한 약속)

학개서는 우리의 삶에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 건축을 하려고 시도하다가 많은 방해와 반대로 인해 중단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중에도 자기들의 집은 짓고 살았지요.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학개 선지자를 통해 엄하게 책망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합니다.

첫 번째 메시지

1장 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라고 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는 고레스 원년(B.C.536년)이었지요.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한동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 제이년 6월 1일(B.C.520년)에 학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16년간의 침묵이 있었지요.

이것은 마치 어린 사무엘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86세를 지나 99세 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창 16:16, 17:1).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시 119:105).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구체적인 삶에서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제멋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목적과 방향, 확신과 안정이 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점검하도록 도와주었지요. 이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 건축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방해로 중단됩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지만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쁜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누구나 이런 삶을 살기 쉽습니다.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의 우선순위를 알면서도 순위가 바뀐 삶을 사는 데 익숙합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급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환경이나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더 그렇습니다. 나중에 해야 할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급한 것부터 먼저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삶은 많은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내 삶의 중간 점검을 할 수 있게 되고, 삶의 패턴을 밝히 보게 됩니다. 은혜는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무는 데서 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종교 의식의 한 순서처럼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내 삶을 돌아볼 안목도 갖지 못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 머물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거나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매여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1장 2-11절에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1:5,7). 어떤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계속 궁핍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원인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1:4,9), 해결책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라고 하십니다(1:8). 이는 우선순위를 바로 하라는 것이지요.

12-15절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동안 중단되었던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합니다. 처음 말씀을 듣고 24일 후에 신속하게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두 번이나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순종하는 그들을 위로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1:13, 2:4).

또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서 너희 손을 견고하게 하여주겠고 너희의 일을 형통하게 하겠다. 너희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하고 너희를 도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물론 학개서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을 말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성전이나 교회당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성전 중심이란 하나님 중심을 말합니다. 하나님 중심이란 말씀과 기도의 삶,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 항상 우선되는 삶을 말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재정비해서 먼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메시지, 여섯 차례의 격려

성전 건축 공사가 시작된 지 한 달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메시지가 책망이었다면, 두 번째는 격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동안에 듣는 말 때문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파괴된 것은 B.C.586년이고, 다시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시기가 B.C.520년이니 66년이 지난 후입니다. 만일 솔로몬의 성전을 본 소년들이 살아 있다면 80~90세일 것입니다. 이들은 지어져 가는 성전을 보면서 감격하기보다는 울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매우 초라했기 때문이지요(2:3, 스 3:12).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이들 포로 2세들은 성전 건축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스 3:10-12). 그날의 광경을 “백성이 (즐거워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라고 했지요(스 3:13).

그러나 이들은 노인들의 탄식을 들으며 점차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쁨이 반감되고, 의기소침해집니다. 그들의 손의 힘이 점점 빠져갔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전의 영광을 들먹이며 현재와 비교하면 안 됩니다. 분발하도록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주눅 들게 한다면 지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라고 전도서 7장 10절은 말씀하십니다.

또한 공사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만큼 해내지 못한다는 비교의식에 사로잡혀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이 교만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서 충성되게 그분을 섬기기만 한다면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너희가 있는 힘을 다해서 성전을 건축한다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라고 하셨지요.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성전 건축을 진행하는 사역자들을 격려하십니다.

격려 1
“비록 이 성전이 이전 성전보다 훨씬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스룹바벨아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백성들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노라”(2:3,4). 하나님은 이들을 더 격려하십니다.

“내가 출애굽 때에 그들과 함께 있어서 내 능력으로 그들을 능히 애굽에서 나오게 한 것처럼 지금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성령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서 너희에게 힘을 주고 지혜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2:5).

격려 2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며,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다”(2:6,7).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열방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거룩한 소동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마 2:3),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으로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행 2:6). 바울과 그 팀이 가는 곳마다 도시가 소동했지요. 바울을 가리켜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라고 했으며 바울의 팀을 가리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행 17:6)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이러한 소동을 ‘거룩한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매임에서 놓임으로, 불의에서 공의로, 거짓에서 정직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병듦에서 건강함으로 옮겨가는 것이 진정한 혁명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 그리고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진동은 개인의 차원,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 차원, 도시와 지역과 나라 차원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격려 3
“조금 있으면 모든 나라의 보배(사모하는 것)가 이르리라”(2:7). 모든 나라가 간절히 기다리며 사모하던 메시아가 오실 거라고 말합니다.

격려 4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2:7). 모세가 시내산에서 장막을 완성했을 때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충만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성전을 ‘제1성전’이라 하고 스룹바벨 성전을 ‘제2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격려 5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2:9).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의 치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건물 규모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다 속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용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 더 중요합니다. 비록 스룹바벨의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용도로 쓰일 것입니다.

격려 6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2:9). 예수님은 “나의 평강을 너희에게 주노라. 나의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요 14:27)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평강은 환경을 초월하는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적 고요함을 유지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선물입니다.

세 번째 메시지

2장 10-19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은 올바른 일이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의 손이 깨끗하지 못하다면 열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물도 거룩하여 하나님이 열납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물도 거룩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만 깨끗하게 하지 말고 속도 깨끗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물을 하나님께 열납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깨끗이 하며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행위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네 번째 메시지

2장 20-23절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미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열방을 흔드실 것입니다.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으시며,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종들은 보호하시며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자연재해나 재정의 어려움이나 질병이나 여러 일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흔들리며, 넘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백성들은 보호하시며 안전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