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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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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저주가 아닌 네 구원을 원한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2024-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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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딤전 2:4

어떤 죄인이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길 원하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진실은 말씀에 있다.
위 구절 그대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소수의 신앙인의 죄만 짊어지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모두 짊어지고 죽으신 분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제물이시다(요 1:29). 그분은 신자들의 죄뿐만 아니라 모든 불신자의 죗값까지 이미 다 지불하신 분이다.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을 들어보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예수님의 죽으심에 값을 매겨보라. 얼마인들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있을까? 그분의 죽으심은 이 세상 무엇으로도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온 세상의 모든 죄인은 죗값을 훨씬 상회하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신 구원자를 통해 유일한 구원의 길을 얻었다.

그 구원은 공의의 하나님 앞에 이미 충분한 죗값을 완불하고 얻은 선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죄인은 이 선물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간다. 평안이 없는 상태를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저 숙명으로 떠안은 채 말이다.


혹시 상한 음식을 아깝게 버려본 일이 있는가? 나는 한우 두 팩을 버려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선물 택배로 보내왔는데, 하필 그때 외국 일정이 있어서 집을 일주일이나 비워야 했다. 집에 돌아와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때는 이미 악취가 가득했고 포장이 막 뜯긴 한우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때 느낀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물론 상한 냄새가 진했던 기억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비싼 선물을 받아놓고 잊고 지내면 얼마나 아깝냐는 것이다.


한낱 한우 두 팩도 못 먹고 버리면 그렇게 아까운데, 복음은 얼마나 더 아까운가! 이미 받은 선물,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구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히 들어있는 이 평안의 소식은 꼭 받아들여야 한다. 나중에 심판대 앞에 서서 그제야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그때는 구원받기에 너무 늦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모두의 죗값을 완불하신 상태다.

이 구원은 매일 살아 숨 쉬며 부활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있다. 이 ‘복음 선물’이 지금 당신의 마음 문 앞에 놓여있다. “택배 왔어요!”처럼 연신 “나는 저주가 아닌 네 구원을 원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계 3:20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구원받기를, 그 구원을 위해 얼마나 비싼 가격을 완불했는지 알게 되기를, 이 진실에 눈뜨기를.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를 들고 오셨다. 그분의 말씀을 먼저 들어보자.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마 18:21,22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당신이 죄로 인해 심판받을 운명으로 죽음을 향해 살며, 평안을 잃은 인생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놔두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의 안타까움에는 강압이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에 대한 ‘선택권’을 당신에게 허용하신다.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며,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마음에는 용서가 가득하다. 위 요절을 보라. 형제의 죄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이는 무한정 용서하라는 뜻의 관용적 표현이다)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 아니신가.


그분은 겉과 속이 다른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말씀이 곧 그분의 존재고 마음이다. 무한한 용서를 요구하신 예수님은 무한한 용서를 언제나 행하신다. 만약 당신이 그분의 말씀을 가감 없이 믿는다면, 평안의 길이 열린다. 용서하시는 그리스도께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


나도 안다. 하나님을 떠나온 세월이 길면 길수록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단지 용서를 구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는 쉬운 길조차 자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 그렇게 스스로를 벌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까지. 나는 안다.


하지만 그런 어두운 생각들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느낌일 뿐, 성경 법에 위배되는 불법적 사견일 뿐이다. 게다가 당신의 목소리도 아닌, 사단의 참소다. 그러니 말씀대로 행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담대히 요청해보자.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저주와 심판의 주께서 당신을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물에 빠져 외치는 베드로의 간절한 구원 호소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이 먼저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 고후 5:20

-불안에서 평안으로, 송준기


† 말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로마서 10장 13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요한계시록 3장 20절


† 기도
주님, 하나님을 멀리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 마음 가는대로 살아갔던 시간에도 주님은 한순간도 제 곁을 떠난 적이 없으셨습니다. 저를 사랑하시고 함께하여 주시는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평안이 누리며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본 테마는 2022년 11월 17일 앙콜테마입니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