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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아닌 사실에 반응하라!

 2016-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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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내가 죄인이며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 앞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동의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육체가 반응하는 왜곡된 감정의 반응을 부인하고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이 원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깨닫게 하시려고 허락하신 제도가 바로 ‘도피성’이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수 20:3).

도피성에 대해서는 은혜의 제도라는 생각만 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다가, 어느 날 묵상 중에 ‘부지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도피성은 그냥 살인자가 아닌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위해 있다. 즉, 분노나 죽이려는 악한 의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만 해당되는 은혜의 제도이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의도성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살인자다. 고의성이 없기에 자신의 감정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또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때가 아니다. 이 상황을 탓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죽자 살자 뛰어야 할 때이다. 그가 만약 억울해하는 동안에 보복자의 손에 잡혀 죽게 되어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민 35:27).

자신을 변명하고 내 감정이 인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일단 도피성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그는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한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한다. 즉, 자신의 죗값을 치른 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선택해서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겨를도 없이 아담의 후손으로 그 죄의 생명을 고스란히 가지고 죄인으로 태어났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니 죄를 짓는 건 필연적인 것이 아니냐’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도 필연적으로 나에게 죄에 대한 대가로 어쩔 수 없이 사망을 선고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충족시키시면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 즉 아담의 후손으로 죄의 생명을 자기고 태어난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놓으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 사망선고에 항소하고 억울함에 몸부림칠 때가 아니라 재빨리 사실을 인정하고 느낌과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상관없이 그 도피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끝이 날 때 우리는 자유인으로 걸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기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된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님께 달려가 어떤 상황이든 이겨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