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하는가?
나의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알아야 생명력 있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생기를 되찾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나온다.
늘 생기 없이 살던 이 여인은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는 음성을 듣고 이 여인은 그 물을 사모하게 된다.
이 여인은 특별한 남자를 만나면 자신의 삶에 생기가 넘칠 것이라 믿었지만 그 어떤 남자도 자신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 넣지 못했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해주신 이후로 생기 넘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사는 게 재미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힘든 일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신나고, 더 자극적이고, 더 중독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런 헛된 것들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인생 최대의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그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영적 희열 가운데서 느끼는 참 기쁨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교회 문턱만 드나드는 의식적인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은 복잡하고, 메마르고, 생기 없고, 걱정과 근심이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신앙생활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다르다. 기쁨과 생기가 넘친다.
현대인의 생기를 가장 많이 빼앗아가는 주범은 염려와 스트레스와 우울증이다.
‘염려’는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상태,‘스트레스’는 자신의 상황과 목표 사이의 차이를 바라보는 상태, ‘우울증’은 극도로 이기적인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상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사는 사람은 이러한 죽음의 목소리들에서 해방되고 살리는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다.
그 목소리는‘사운드(sound)’가 아니라,‘파워(power)’다. 우리를 죽이려는 목소리들을 다시 죽이는 일을 하는 목소리이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의 삶에는 생기도 없고 생명력도 없다. 따라서 남을 살리는 영향력 또한 발휘하기 쉽지 않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기 넘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이 넘쳐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아나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생기 넘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아름다운 도구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 요한복음 5장25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요한복음 10장26,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요한복음 6장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