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소유가 많아진 까닭에 다툼이 생겼다.
그런데 예배가 회복되고 영적으로 충만했던 아브라함은 이 대인관계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성숙했다. 아브라함이 대인관계에서 보여준 성숙함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한 가지만을 다루고자 한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대인관계의 성숙은 ‘정확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성경은 그 다툼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렇게 분석한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 창 13:6
성경은 소유가 많아서 분쟁이 있었다는 것,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내놓은 대안이 무엇인가? 창세기 13장 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아브라함은 성경이 분석한 다툼의 원인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나는 담임목사로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제목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안목을 달라는 것이다.
최근에 《실력보다 안목이다》(김용섭)라는 책을 보았는데,
그 책에서 안목을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라고 정의하면서
비즈니스 분야에서 안목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서 ‘비즈니스’는 싹싹 지우고 이렇게 읽기를 원한다.
“신앙생활 하는 차원에서 안목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믿음이 있었던 아브라함과 믿음이 부실해 보이던 롯의 결정적인 차이는 안목의 차이다.
9절에서 아브라함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했더니 안목 없는 롯은 이렇게 반응한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 창 13:10,11
안목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라고 했는데, 롯은 드러난 것밖에는 볼 수 없던 자였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 창 13:12,13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복된 하나님의 동산 같은 땅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결정적인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망한 것 아닌가.
시편 119편 99절에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명철’이 영어 성경에서는 ‘insight’로 표현되어 있다.
인사이트는 우리말로 통찰력이다.
다시 말해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인사이트라고 한다.
안목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듯 인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에게 아웃사이트만 보는 눈이 아니라 영적인 안목, 인사이트까지 볼 수 있는 영안을 주시기를 바란다.
이것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고후 4:18
같은 장소에서 있던 두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져 버렸나?
나는 아브라함과 롯의 근원적인 차이를 창세기 12장 4절에서 찾는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지만, 롯은 그의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갔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한국교회가 미성숙해진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목사는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 성도들은 그 목사를 따라갔고.’
이렇게 되면 그 교회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도 ‘분당우리교회에서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왜 사람을 보는가? 목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물론 영적인 지도자이니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목사만 쳐다보는 구조가 한국교회의 미성숙함을 불러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브라함의 성숙함과 롯의 미성숙함을 가르는 결정적인 이 말씀을 우리의 기도 제목으로 삼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은 아브람을 따라갔고.”
눈에 보이는 담임목사가 너무 중요해진 그때부터 우리는 이미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담임목사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인 줄 믿기 바란다.
이렇게 출발이 다른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아브라함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은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말씀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롯의 비극을 피하는 유일한 대안임을 마음에 품고 사모할 때,
문제가 많은 이 시대에 반석이 될 줄로 믿는다.
-가슴 뛰는 부르심, 이찬수
†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편 1편 1, 2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 시편 18편 30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장 8절
† 기도
하나님, 세상의 화려함에 가리어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영적인 안목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나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시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만을 따라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적용과 결단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집중하다 보면 정말 보아야 할 결정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아브라함과 같이 나의 눈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맞춰지고 집중하기를, 늘 깨어 있도록 기도합시다.
본 테마는 2022년 4월 21일 앙콜테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