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라. 당신이 보고 원하는 모든 것, 마음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입장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그런 입장이 되면 혹시 당신은 ‘이제 내가 결국 인생의 만족을 얻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인가?
탐구자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지배했던 ‘즐기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 분명하다. 그때 그에게 중요했던 것, 아니 ‘유일하게’ 중요했던 것은 즐기며 살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즐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웃음, 섹스, 술 같은 것이 즉시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탐구자는 우리들 대부분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에게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여유가 있었다! 재정에 한계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그처럼 “내가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탐구자는 재물, 권력, 영향력, 온갖 좋은 것들을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그것들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다. 말만 하면 얼마든지 그에게 제공되었다.
우리 한번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도 그가 누렸던 삶을 누리기를 은근히 갈망하지 않는가?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대략으로 말해서, 그들이 묘사하는 천국은 탐구자가 누렸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렇게 본다면 탐구자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린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 2:11)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 단언하건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즐거운 삶을 통해 지속적 기쁨을 맛보려는 시도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고 끝없이 발버둥치는 것이다.
갈증을 없애려고 이 우물 저 우물을 찾아다니지만, 우리의 갈증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 2:11)
† 말씀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 전도서 2장 1절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 전도서 2장 10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 전도서 12장 1절
† 기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즐기고 있는 것이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헤어나오게 하소서. 그럴 수 있는 분별의 영을 허락하시고 주님만을 즐길 수 있게 하옵소서.
† 적용과 결단
나의 생활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쏟고, 찾고, 행하는 일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지 않는 일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며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