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랫동안 가정을 두 가지 얼굴로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한 얼굴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책임감, 어머니의 새벽 제단, 가족을 위해 끝까지 버티려 했던 마음, 무너지는 순간에도 예배의 자리를 놓지 않으려 했던 신앙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얼굴은 고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연약함과 무너짐, 어머니의 다 태워진 헌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상실과 눈물, 그리고 그 모든 일들 사이에서 제 안에 쌓여갔던 두려움과 원망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가정을 생각하면 감사보다 먼저 복잡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왜 어떤 기억은 나를 붙들어주고 어떤 기억은 오래도록 나를 흔들었는지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부모에게서 분명 많은 것을 받았지만, 그 안에는 이어받아야 할 유산도 있었고 끊어내야 할 굴레도 있었습니다. 사랑도 배웠지만 침묵도 배웠고, 헌신도 배웠지만 상처를 다루는 서툰 방식도 함께 배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가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교회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더 깊이 빚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혼 5년 차,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이름 아래 제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유산과 산후 우울증으로 깊이 지쳐 있던 아내를 곁에 두고도, 저는 집회와 사역의 자리로만 달려갔습니다. 부부 사이가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캐나다 유콘에서 사역하시던 선교사님 부부가 제 아내와 아들을 40일 동안 품어주셨습니다.
가족을 데리러 간 저에게 선교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 선교사님, 사역을 멈추세요. 사역에 열심인 것이 꼭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예배당에 엎드려 기도하던 중, 저는 마침내 제 안의 끔찍한 위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와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울며 기도했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아내의 눈물과 슬픔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아내의 눈물이었구나, 내 아내의 슬픔이었구나.”
저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을 멈추고 가정 앞에 다시 섰습니다. 그날의 회개는 제 부부 관계와 사역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단지 쉬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면을 벗어던진 채 서로의 밑바닥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였습니다. 은혜가 성품으로 번역되고, 교리가 삶의 언어로 증명되는 자리였습니다. 가정은 내 안의 은혜가 정말 삶이 되었는지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며 은혜의 열매가 검증되는 자리였고, 성화의 일상 학교였습니다.
가정은 언약이 세대를 따라 전해지는 자리이며, 예배가 일상의 호흡이 되는 자리입니다. 가정은 환대와 증언을 통해 복음이 밖으로 흘러가는 자리이며, 무엇보다 성화의 열매가 관계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복음 밖에서 다루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훈련하시며 예배자로 세우시고 세상으로 보내시는 그 은혜의 흐름이 집 안의 삶 속에서 흐릿해집니다. 그러나 가정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이해하면, 은혜와 훈련과 예배와 선교가 다시 가장 가까운 일상 속에서 하나의 길로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을 신앙의 부록처럼 여겨, 교회만 뜨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예배의 공기는 사라지고, 말씀은 식탁에서 끊기며, 기도는 위기의 순간에 작동하지 않고, 관계는 세상 방식대로 굳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정을 지나치게 이상화해, 좋은 가정이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성경은 가정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가정은 목적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면은 한 핵가족의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가정영성의 마지막 소망은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에 응답하여, 마지막 날 그 영원한 식탁에 함께 앉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가정 때문에 지쳐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집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집을 기뻐하십니다.
짧은 가정예배, 식탁에서의 한 절 말씀, 잠자리 1분 축복기도, 배우자에게 건네는 사과 한마디. 그런 작은 걸음들이 모여 집의 공기를 바꿉니다.
하나님의 일은 대개 그렇게 시작됩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작지만 실제로, 집 안의 공기를 바꾸는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 가정영성학교, 지현호
† 말씀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 디모데전서 3:5
† 기도
주님, 제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인 가정에서 먼저 복음을 살아내게 하소서. 사역보다 사람을, 열심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우리 가정을 예배와 용서와 회복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세워주소서.
† 적용과 결단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겠습니다. 가정에서 말씀과 기도가 이어지는 삶을 실천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첫 번째 사명인 가정을 믿음으로 세워가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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