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퇴직 후 살 집을 보고 덜컥 통장 잔액인 천 불을 계약금으로 낸 후, 토니 목사와 나는 몇몇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월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래, 할 수 없지…. 남편 말대로 내가 천 불짜리 왕사탕 하나 사 먹었다고 생각하자!’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천 불이 생각날 때마다 애써 고개를 저었다.
집을 보고 온 지 1개월쯤 된 날이었다. 시누이인 말시가 전화로 “이번 주에 어머니 유언장 공개 약속이 잡혔으니, 변호사 사무실에 함께 가요”라며 우리에게 갑자기 시카고로 오라고 했다.
하필 정말 바쁜 한 주였다. 나는 뉴욕 교회에 집회 일정이 있어 대륙을 횡단해 출장을 가야 했다. 이미 부흥회 광고가 나간 상태여서 취소할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토니는 시카고로, 나는 뉴욕으로 따로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같은 날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서 각자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떠났다.
뉴욕 집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부흥회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샌타바버라 목양관으로 떠나기 위해 여행 가방에 옷을 챙기고 있는데 한밤중에 토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여보! 잘 있었어? 내 목소리 잘 들려?”
‘아니, 한밤중에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토니는 평소 침착한 성격이다.
감정 굴곡이 별로 없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다르지만. 내가 토니에게 말했다.
“잘 들리니까 고함치지 말고 조용히 말씀하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토니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뭔가 의아해서 내가 물었다.
“여보, 나는 오늘 집회 잘 마쳤어요. 그런데 당신 무슨 일 있어요? 괜찮아요? 토니?”
갑자기 그가 울먹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시카,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오늘 엄마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어. 그런데 엄마가 상당액의 주식과 채권을 남기고 가셨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정말 큰 금액이야.”
순간,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올 때처럼 배가 울렁거렸다. 뱃속에서 나비 같은 것이 펄럭펄럭 날아가는 느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침대에 널린 옷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구순이 넘으신 분이 어떻게 주식과 채권을 하셨지? 컴퓨터 켜고 끄는 법도 잘 모르시던 분이…. 주식이나 채권은 나도 할 줄 모르는데…. 혹시 이것이 꿈인가, 영의 세계인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며 앉아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당신 내 말 듣고 있어?”
“네, 듣고 있어요. 말이 잘 안 나와서요. 얼마나 남기셨는데요?”
“주식이나 채권은 팔아봐야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있어. 매일 변동하니까. 그런데 오늘 저녁 뉴스에서 현재 주식 시장이 15년 만에 최고 정점이라고 보도했어. 어찌 됐든… 당신이 지금 가장 가지고 싶은 게 뭐야? 내가 사줄게.”
나는 생각도 안 해보고 바로 대답했다.
“저요? 그 집이요. 제왕나비의 집!”
토니는 잠시 침묵했다. 둘 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차분한 말투로 돌아온 그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사줄게. 당신, 나 사랑하지?”
“오, 그럼요! 하늘만큼 땅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하늘만큼 땅만큼 당신을 사랑해요’를 한국어로 고백했다(이 말은 토니도 배워서 가끔 내게 말해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님만큼은 아니에요, 헤헤헤.”
주님께서 우리 모든 대화를 듣고 계시기에.
그날 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혼자 호텔 방에 누워있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원하던 집을 살 수 있어서 기쁜 게 아니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살아계심을 증명해 주셨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기뻤다.
책과 영상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내쳐지고 갈 곳이 없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갈 곳을 주셨다. 장차 우리가 거주할 장소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주신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 우리 주인님이시다. 길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길을 만들어 주셨다. 기적이 일어났다. 할렐루야!
목사가 되고 수십 년을 집도 없이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떠돌았는데… 이제는 갈 데가 있다. 이사를 해서 거주할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형언하기 어려운 안도감을 주었다. 문득 에스더의 부림절이 생각났다. 우리를 신원해 주시는 여호와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
문득 케냐에서 영양실조로 머리가 어지럽던 때가 떠올랐다. 마른 식빵을 최고의 간식으로 알고 먹던 장애 아이들 얼굴도, 지금도 매달 우리가 보내는 적은 돈을 기다리는 빈민굴 고아들의 옥수수 빵가루 묻은 얼굴도 떠올랐다.
정년퇴직 이후를 위해 인색할 만큼 아끼고 절약해서 돈을 모아뒀었다. 그 돈은 긴 세월의 수고와 절약이 켜켜이 쌓인 나의 미래이자 작은 안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케냐에서 남김없이 다 긁어서 쓰게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허탈함과 두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차올랐다. ‘왜 하필 지금일까?’ 하는 질문이 밤마다 나를 붙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곳에서 마주한 원주민들의 눈빛과 손길 그리고 말없이 전해지던 감사가 내 마음을 조금씩 바꾸었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기적 같은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아니, 차고 넘치도록 부어졌다. 주님께서 한 방에 다 갚아주셨다.
내가 쥐고 있던 계산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내 빈손을 가득 채우셨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
이유도 모를 눈물이 흘렀다.
억울함도, 두려움도 아닌,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경이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밤, 처음으로 알았다. 비워진 자리에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은 언제나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크고 깊다는 것을.
- 레바논의 시내, 제시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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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이사야 43:19
† 기도
주님, 내 삶도 부족한데 내가 먼저 나누라고 하신 말씀 따라 나누면서도 문득 억울함도 있고 미래를 향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했기에 억울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보기에 두려웠지만 이제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나의 억울함, 두려움도 주님께 맡기니 주님 나의 마음, 나의 삶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기보다는 주님만 바라보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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