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회에 서기 전, 내 영을 깨우기 위한 금식, 행동을 동반한 참된 회개, 언행을 조심하는 경건한 마음가짐, 갓 태어난 설교 본문을 받기 위해 주님께 조르기 등 홀로 외로운 영적 전쟁을 준비한다. 물론 믿음과 능력이 출중해서 이렇게 하지 않아도 집회를 멋지게 이끄는 유능한 목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대상 앞에 서기까지 주님 앞에서 심한 떨림과 두려움, 울렁증으로 긴장 상태에 몰입한다. 특히 금식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건 생활이다. 내게 참다운 금식은 음식뿐 아니라 TV, 전화, 문자, 인터넷, 쇼핑, 취미 생활 등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즐거움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하면 된다. 다만 내 마음이 남들보다 더 강퍅하기에 나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과정이 더욱 힘들다. 그래서 집회에 가는 것이 영적 부담이 되어버렸다.
목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 사명임을 머리로는 분명히 알지만, 현실은 종종 그 사명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유명 목사가 아니기에 큰 교회에서 집회 초청을 받는 일이 별로 없다.
대형 교회 목사들은 대개 내 설교를 좋아하지 않는데, 나 역시 그 이유를 잘 안다. 내 책들에 그 이유가 담겨있다. 그래서 집회 초청은 주로 작은 교회나 개척 교회, 이름조차 생소한 시골 교회에서 온다.
퇴임한 목사가 강사로 초청받은 뒤, 자기 생활비로 비행기표를 사고 숙박비를 지불하며 식비도 해결하면서 이 교회, 저 교회로 복음을 전하러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그 길에 누가 선뜻 “나를 보내소서”라며 손을 들겠는가! 교인 수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교회에서 집회를 마친 뒤 받은 사례비 봉투에 내가 가진 돈을 더 보태어 자녀를 둔 젊은 담임목사에게 건네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라!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너무 쉽게 가장 정의로운 자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당신이 부흥 강사라고 가정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과연 그런 길 앞에서 선뜻 손을 들며 “저요! 저를 보내주시오”라고 자원할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처음 몇 번은 불타는 사명감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신용카드로 결제한 여행 경비의 고지서가 차곡차곡 빚이 되어 우편함에 쌓인다. 빚은 숫자로 찍혀 오지만, 마음에는 삶의 무게로 내려앉는다. 아마도 이런 빚 앞에서 길게 버틸 장사는 없을 것이다. 오래 반복되면 배우자의 눈빛이 달라질 수도 있다. 따가운 눈총이나 미움을 받기 십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였을까. 목양관을 나온 이후로는 추운 날 전기세를 아끼려고 난방이나 전기장판도 켜지 않고 잔다. 그러면서도 토니 목사의 국민연금으로는 케냐 아이들의 식량비를 송금한다. 집회를 다니며 드는 비용도 그 연금에서 조달한다. 나는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국민연금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 늘 미안하다. 돈도, 명예도,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도 완전히 내려놓고 나니 이상하게도 집회 자체에 대한 흥미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은 참 간사한 존재다. 자신의 꿈과 야망이 사라지면 노력하려는 의지조차 약해진다. 듣기 싫은 핍박의 소리에 비참해지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박해받아 상처 입고 시험에 드느니, 그저 주님과 둘이 알콩달콩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다가 때가 되면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입가에 행복한 미소까지 번진다.
그런데도 어떤 집회 초청은 진실로 다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감동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런 경우에는 내 뜻이나 계산에 상관없이 움직인다. 손해와 체면과 피로를 넘어 반드시 가야 한다는 확신이 내 심령을 붙든다. 그런 집회에는 언제나 특별한 추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으나 하늘에서는 귀히 여기는 영혼의 추수가 일어난다. 그래서 요즘은 집회 초청이 오면 주님께 참석 여부를 먼저 여쭙고 결정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집회라면 다시 묻지 않는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한다.
한번은 그런 부르심이 있는 집회에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 적이 있다. 교회가 주최한 집회도 아니었다. 한국인도 거의 없는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수의 한인 동포가 모여 초청한 예배였다. 가정집에서 집회를 시작하던 첫날, 강단도 없이 작은 탁자 앞에 섰다. 예배 장소는 소박했고 조명도 밝지 않았다. 의자도 없이 모두 카펫 바닥에 앉아있었다. 피아노조차 없어서 한 청년이 통기타로 찬양 인도를 했다. 그마저 서툴렀다. 나는 준비해 간 말씀을 묵상하며, 늘 하던 대로 설교 원고 없이 성경을 펼쳤다.
그러나 말씀을 시작하는 순간, 내 안에서 다른 장면이 열렸다.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주셨다. 작은 예배당이 된 가정집 위로 보이지 않는 빛이 드리워지고, 천사들이 분주히 오가며 한 영혼을 둘러싸고 있었다. 눈물로 오래 준비된 한 사람이 왕 앞에 단장된 신부처럼 서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모임이었으나, 하늘에서는 신실한 신부 추수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전하며 울었다. 나의 피곤과 억울함과 가난함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주님 앞에 내 철없음이 부끄러워 펑펑 울고 회개하며 말씀을 증거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무명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내 통장이 비었어도, 강단이 작아도, 사례비가 없어도 왕이 부르시면 그 자리가 가장 존귀한 자리임을 깨달았다. 집회는 내 자존심을 세우는 무대가 아니었다. 한 영혼을 건져 올리는 하늘의 작업 현장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금 확신했다. 나는 초라한 퇴임목사가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는 종이라는 사실을. 집회로의 부르심은 위대하신 주님께서 거룩한 전쟁터에 임하라고 명하시는 초청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이미 받았다. 그리고 오늘도 묻는다.
“주님, 가야 합니까?”
그분이 고개를 끄덕이시면,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 영광스러운 신부, 그 고귀한 탄생을 위한 추수를 믿으며.
- 레바논의 시내, 제시카윤
† 말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고린도전서 4:1~2
† 기도
주님 인도하시는 길에서 인간적인 마음으로 형편을 고려하며 재고 따지지 않고 즉시 순종하는 마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여 주세요.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축복해 주셔서 발걸음이 닿는 곳에도 주님의 축복이 흘러 가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는 묻고 따지지 않고 순종함으로 한 걸음 내딛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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