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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꼭 받아먹어야 할 것?

말씀 암송이 곧 지성소의 삶이 된다!

 2026-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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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구조와 알고리즘은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있다.

나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여 팔로워 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셀프 브랜딩을 강화하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온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세대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태블릿 및 스마트폰에 의해 자아가 점점 더 충만해져 갈 수밖에 없다.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들이 우리를 자아 중독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 안에서 손가락으로 콘텐츠를 클릭하고 소셜미디어를 계속해서 스크롤링 하다보면 좀처럼 그 동작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에서는 ‘멈춰야지’ 하지만 ‘하나만 더’라는 속삭임에 여지없이 빠져들어간다. 겨우 클릭과 스크롤링을 멈추고 돌이켜서(회개하여) 성경을 읽다가도, 몇 분 만에 다시 유튜브를 클릭하게 된다. 머릿속 신경세포 회로가 그렇게 형성되어져 가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어떤 성도는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만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에 의해 듣고 싶은 쪽의 설교만 계속 듣게 된다. 자기가 선호하는 설교만 듣게 되는 모습은 사실상 말씀 자체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 자체가 아니라 말씀에 대해 누군가가 설명하는 이론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어떤 성도들은 신학자들, 목사들, 선교사들, 혹은 특정 단체들이 제공하는 주석과 성경공부 교재, 제자훈련 교재, 성경 읽기표 등 다양한 참고 자료들을 통해 성경에 집중한다. 성경 전문가들의 도움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해석이나 깨달음이 결코 완전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완전하지 않은 성경 해석자들의 알고리즘 안에 갇혀버릴 위험도 존재한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알고리즘적으로 누군가 또는 어떤 단체가 선별해주는 해석에만 머물게 되면, 원저자인 성령께서 말씀을 풀어주시는 초월적이며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히브리적 사고와 구조로 기록된 성경을 헬레니즘적 틀로만 접근하려 할 때 드러나는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그 유명한 뇌과학 박사도, “늘 보던 뉴스나 알고리즘적으로 골라주는 정보만 접하다보면 나의 그릇을 깨고 나와 새로운 것을 알기가 어려워진다”라고 말한다.

 

성경은 누군가의 어떤 해석으로 제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입김으로 통전적으로 쓰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선 해석자들의 성경에 대한 견해를 존중하되 그들의 이론들을 절대화하지 말고, 그들의 알고리즘에 묶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절대 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만이 완전하다는 경외심이 있어야 한다( 4:4).

 

그러므로 누군가의 해석에 묶여 헬레니즘적으로 제한되지 않도록, 성경을 날것 그대로 먹는 방법인 쉐마에 문자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쉐마에 그대로 순종하며 옛 부대를 계속 찢듯이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예배할수록 우리는 곤고한 존재임을 알게 되며( 7:24),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동행하게 된다.

 

동행! 우주 만물의 창조자, 인류 역사의 주관자, 죽음과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연합됨을 누리게 하시며( 14:20), 다시 오실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님과 24시간 동행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쉐마 속에 24시간 동행의 비밀을 숨겨두셨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하늘에서는 영원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12,000 스다디온씩으로써 정육면체(큐브)( 21:16). 큐브 모양인 새 예루살렘이 땅에 반영된 것이 성전의 지성소인데 역시 큐브다(왕상 6:20). 바울은 에베소서 3 18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넓이(가로)와 길이(세로)와 높이와 깊이로 표현했다. 이것은 지성소의 큐브 모양을 연상케 한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만 임재하시므로 지성소의 모양인 정육면체(큐브)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도형이다. 미래에 내려올 완전한 도시 새 예루살렘 시티(큐브 모양)의 삶을 이 땅에서 미리 살 수 있는 방식이 바로 큐브인 지성소적 삶에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만 임재하시기 때문에 히브리서 9 1절에서 성소는 세상에 속했다고 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소를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결코 성소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도 성소에 머무르지 않는 신앙을 영위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완전한 정육면체(큐브)적인 말씀 자체에 대하여 사람들이 해석하여 해설한 노력들이 덧붙여질 때 정육면체는 직육면체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성소는 정육면체(큐브)가 아니라 직육면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직육면체인 성소에 머물지 않고 큐브인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해석이나 설명의 도움을 받되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도 거기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완전성을 나타내는 큐브인 지성소와 같은 완전하신 말씀, 그 자체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성소에 머무르지 않는 신앙이다.

 

대제사장은 지성소(큐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제사에 관한 말씀들에 대해 해석하거나 적용점을 찾는 직육면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제사에 관해 쓰여진 말씀을 날것 그대로 통째로 암송하여 성막의 기명들에 해당하는 쓰여진 말씀을 그대로 체험하며 지성소로 나아간다.

그렇듯이 쉐마에 그대로 순종하여, 앉고 길을 걷고() 눕고 일어설 때마다() 완전하신 말씀을, 책에 기록된 대로(모세오경이 쓰여진 대로) 입에서 떠나지 않게 암송하여 말씀 큐브에 잠기는 것이 지성소적 삶인 것이다. 그럴 때 낱권별 통암송으로 말씀 큐브에 잠겨 앉고 길을 걷고 눕고 일어서는 모든 순간 모든 장소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는 지성소(큐브)의 삶이 된다.

 

- 말씀 큐브, 지용훈



†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태복음 4:4

 

† 기도

하나님, 말씀 암송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을 놓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적용과 결단

말씀을 매일 보고 암송하기를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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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