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과 무조건, 두 세계관의 갈림길에서... (창50장)
오늘로서 두달에 걸친 창세기 묵상의 대장정을 마무리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이 '여전히 두려워하는 형들'과 '그들을 향한 요셉의 눈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깊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형들은 요셉이 베푼 풍요 속에서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요셉의 용서를 진짜로 받아들이지 못한 듯 합니다. "죄를 지었으니 언젠가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인과응보의 세계관, 그 창살없는 감옥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건적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 그들에게 요셉의 사랑은 그저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만 유효한 '시한부 자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반면, 요셉의 세계관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형들의 죄를 '하나님의 섭리'라는 언약의 바다 깊숙이 던져버렸습니다. 요셉은 상대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사랑하는 '무조건적 아가페 '의 세계관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여전히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형들을 향하여 아픈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거대한 두 세계관의 대립을 '종'과 '자녀'의 비유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4:6-7)
새 언약 백성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자격이 있어야 사랑받는다"는 종의 논리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아들, 딸로 부르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탄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건>이라는 무기를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조건>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속이며, 우리의 정체성과 영적인 유업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도발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가 24시간 쉬지않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조건적 사고방식>으로 물들이려고 한다면... 이에 맞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24시간 내내 <하나님의 조건없는 아가페 사랑> 안에 보란듯이 푹 잠기어 사는 것입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조건의 감옥'에서 죄의 종노릇 하던 세월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로마서 6:22)
창세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조건과 무조건, 이 두 세계관 중 당신은 어디에 몸담고 살 것인가?" 오늘 하루, 저는 <조건>이라는 껍질 속에서 죽어가는 애벌레의 삶을 거부합니다. 그 껍질을 깨고 나와 <무조건적인 아가페>의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의 삶을 누리기로 선택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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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의 감옥에 갇혀
죄책감 속에 죽어갈 것인가?
아가페의 창공을 누비며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 것인가?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거대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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