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의 부모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 (창21장)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아브라함)’와 ‘열국의 어미(사라)’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1장은 오랜 기다림 끝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게 하심으로, 두 사람의 믿음이 이름에 걸맞은 ‘열국의 부모’로 거듭나는 위대한 영적 터닝포인트를 보여줍니다.
1. 열국의 어미로 거듭난 사라
1년 전, 하나님께서 아들이 있을 거라는 약속을 주셨을 때 사라는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대로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고, 사라의 비웃음은 마음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된 감격의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쁨 속에서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사건의 영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해석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30)
과거 사라가 임신한 하갈을 학대하며 쫓아냈었던 것이 단순한 감정적 폭발이었다면, 이번에는 '육체를 따라 난 자(율법/인본주의)'와 '약속을 따라 난 자(은혜)'를 철저히 분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계산으로 만들어냈던 불신의 산물이었습니다. 사라는 이제 자신의 인본주의적 열매를 과감히 정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약속의 자녀에게만 유업을 잇게 하겠다는 거룩한 선언을 한 셈입니다. 이로써 사라는 인간의 노력을 버리고 오직 은혜의 통로가 되는 '자유 있는 여자', 곧 열국의 어미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2. 열국의 아비로 거듭난 아브라함
아브라함 역시 늘 죽음의 공포에 매여 생존을 위해 타협하던 삶에서 벗어나, 언약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모르는 아비멜렉의 입술이 그 도구였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이방 왕의 고백은, 사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먼저 세상 앞에 당당히 선포했어야 할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실수로 위축된 아브라함을 격려하시기 위해 대적의 입술을 빌려 그와 함께하심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동시에 아비멜렉을 통해 "다시는 거짓되이 행하지 말라(23절)"고 엄히 말씀하심으로, 적당히 둘러대며 습관적인 거짓말로 대처하던 아브라함의 삶에 정직의 울타리를 쳐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브라함은 더 이상 조건적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태도를 바꿉니다. 빼앗긴 우물에 대해 아비멜렉을 당당히 책망한 것도 이제 더이상 세상 권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무릎꿇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결국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으며, 당장의 생존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의 이름을 부르는 열국의 아비로 빚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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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는 세상의 입술을 빌려서라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만든 불신의 산물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봅니다. 열국의 부모는 자신의 조건적 계산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 언약에 온전히 항복할 때 비로소 빚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내 모든 연약함과 두려움과 조급함과 자격없음을 내려놓고… 날 향한 위대한 꿈을 품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기대어 내 삶을 온전히 맡겨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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