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 큰딸의 백일을 맞아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공부하던 학생, 교회 친구 그리고 이웃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그날 우리 집 문 앞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미국은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는 문화여서 이런 요구가 불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손님이 기꺼이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다리를 조심스레 모으고, 조금 어색해하면서도 반나절을 기쁨으로 함께했다.
그들은 호스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손님으로서 예를 다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차려주신 잔칫상이다.
우리를 초대하신 그분의 집이다.
그런데 문 앞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경통독.”
다 읽으라는 요청이다.
성경을 단편적으로 인용하거나 부분 발췌하지 말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으로 읽으라는 요구다.
하나님은 성경이 그렇게 읽히기를 원하신다.
성경통독은 선택 이전에 요청이다.
하나님의 파티에 들어가려면 내 문화, 경험, 기준을 내려놓고 그 요청을 따라야 한다.
성경은 “읽기 힘드시지요?”라며 우리를 타이르지 않는다.
대신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명령한다(마 28:20).
우리는 왜 ‘성경통독’이라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야 할까?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성경이 ‘통독적 접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나 권면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답게 다루기 위한 방식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눈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이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눅 24:44). 여기에는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확고한 선언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단 몇 구절만 인용하지 않으셨다.
율법서, 선지서, 시가서를 포괄하는 히브리 성경 전체 구조를 따라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 성경을 다시 풀어주시면서 ‘전체 이야기’를 보게 하셨다.
‘통전적(統全的) 시각’을 심어주신 것이다. 이것이 부활 이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이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성경 읽는 방식에 관한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 방식을 따라 가르쳤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요엘서와 시편을 인용하여 성령 강림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했다. 그는 성경 전체의 흐름 안에서 예수님의 구속 사건을 조명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도들도 구약성경의 전체 맥락 안에서 설교했다.
사도 리더십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성경통독 방식을 따랐다.
평신도였던 스데반도 성경통독의 관점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그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해 요셉, 모세, 다윗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설파했다(행 7:1-53). 성경을 통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설교였다.
성경통독은 ‘초대교회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로써 교회의 사명은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되었다.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을 알려주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님 역시 말씀의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었다(요 14:26). 그래서 교회는 성경 일부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성경통독 공동체’다.
성경통독은 여러 훈련 프로그램 중 하나가 아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며 예수님과 사도들과 성도들이 실천했던 본래 방식이다.
성경은 독자에게 통으로 읽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말씀의 흐름이고, 구속사(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구조이며, 교회의 근간이다. 우리가 성경통독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건,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함뿐 아니라 본래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프로그램, 성도 수나 조직력에 있지 않다. 교회는 오직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다(고전 1:5(”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 이란 성경 전체를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에 대한 표현), 엡 2:20). 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교회는 말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정답은 ‘전체로’다.
성경을 전체로 읽지 않는 교회는 기초 없이 세운 건물과도 같다.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어도, 영속할 수 없다. 결국 무너진다.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성경의 몇 부분만 인용하지 않는다. 성경 전체의 흐름과 맥락, 구조와 중심 메시지가 교회의 존재를 이룬다.
성경 일부를 반복하는 것도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 이야기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조직신학적으로 분류된 신앙 주제들의 나열이 아니다. 코끼리를 알려면 코끼리 전체를 다뤄야 하듯, 성경을 알려면 성경 전체를 다뤄야 한다. 교회는 성경의 전체 메시지를 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그분이 말씀 전체를 조명해 주신다(요 14:26).
그럴 때 부분이 살아난다.
성경 전체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라는 진리가 각 부분에서도 읽히며,
이는 나아가 삶의 수많은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된다.
그래서 사도들과 초대 교회들은 이 진리를 전하는 일에 주력했다(행 5:42).
성경 전체를 관통해서 읽을 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득하게 된다.
그분의 조명 없이는 성경 전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전체 그림이 없으면,
각 퍼즐 조각의 의미도 사라진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의 통전적 깊이와 폭을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위기를 말한다.
교인 수가 줄고,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다루는 데 있다. 전체를 읽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설교하지 않을 때, 교회는 정체성을 잃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로 품을 때만, 그 본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성경통독은 회복의 첫걸음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기초 작업이다.
- 헤브론 성경통독, 송준기
† 말씀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누가복음 24:27
† 기도
무엇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데 주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 다른 이들의 이야기, 나의 생각, 경험 등에 더 귀 기울였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말씀 듣고 말씀의 그 깊이와 넓이를 경험하는 시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나의 삶의 무너진 곳이 말씀으로 세워지고 회복되는 귀한 시간 되길 간구합니다.
† 적용과 결단
바쁠 때에는 틈틈이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는 틈을 찾기를 원하고,
여유 있을 때에는 다른 것보다 말씀 읽는 것에 더욱 집중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 누리기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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