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육아에 지친 몸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힘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노는 것만으로 무한 감사라고 생각하며 나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성령님의 음성이 내 안에서 들려왔다.
‘미나야,
저 아이들을 겉모습으로 보지 말고 영혼으로 바라보아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말씀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으로 바라보아라.’
우리는 자녀들을 놓고 무엇을 위해서 울고 있는가?
더 좋은 옷을 입히지 못해서, 더 좋은 것을 먹이지 못해서,
더 좋은 교육을 시키지 못해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해서일까?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임했던 성령님의 음성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부모에게 들려오길 간구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아이들 영혼의 상태를 밝혀 보여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시 부모 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홀로 눈물짓는 아이들은 없는지,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으로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방황하는 아이들은 없는지,
예수님을 거부하는, 마음이 메마르고 강퍅한 아이들은 없는지….
아이를 낳긴 낳았는데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제발 가르쳐달라고 울부짖는 나에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키워다오”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그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니,
아이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이 그동안 숱한 어려움과 힘듦을 견딜 수 있게 힘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말씀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말씀을 외우고,
함께 성경을 읽어나가고, 묵상하는 말씀 훈련들이 부모인 우리에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음 없이, 말씀 없이 허무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아이들의 영혼에 대하여
애통함이 있는 부모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일을 하게 되어 있다.
비단 자녀 양육의 영역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든지 ‘어떻게 저런 일들을 감당할까’ 하는 곳에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기록한 말씀들을 읽을 때마다 곳곳에서 “나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그 긍휼의 마음이 십자가 고통을 감당하시고 인류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자녀를,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나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와 같이 여기고
이 땅에서의 겉모습에만 마음을 쏟지 않기를.
자녀들을 예수님이 필요한 영혼으로 보고 불쌍히 여기며 그 영혼을 끌어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하나님을 전해주며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그런 부모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울보엄마>권미나
아이를 키우다보니 키우는 그 순간에는 성적, 교우관계, 키, 공부 등, 세상에 뒤떨어질까봐 걱정되고 불안했었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보니 아이를 양육하면서 때를 놓치면 다시 해줄 수 없는 건 신앙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는 자녀가 되도록 부모의 기도로 돕길 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