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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 점수를 지금 확인해보시겠어요?

유치원때부터 레벨테스트를 봐서 좋은 학원을 다녀야 하고 시험을 보면 나오는 점수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몇점짜리 인생으로 결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기고 있는 점수의 기준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눈을 훈련하고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점수 매기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곧잘 점수를 매긴다.
외모 몇 점, 학력 몇 점, 가정환경 몇 점, 경력 몇 점, 성격 몇 점, 인간관계 몇 점, 그래서 총합 몇 점.
이 점수는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기분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점수가 낮을 때는 자신을 흙수저의 줄에 세운다. 줄을 세우는 데 기준이 되는 점수는 딱히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사실 점수를 매기는 방법은 대부분 자신에게 중요했던 타인에게서 배운 것이다. 즉 우리는 부모가 매겨주던 점수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너는 누구를 닮아 이렇게 못 생겼니?” -10점.
“공부도 지지리 못하네.” -20점.
“성격 하나는 그래도 괜찮아.” +30점.

부모가 주던 그 점수가 너무 싫었다고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자신에게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야박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별로 우수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더 타당성이 없는 것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매긴 가치 점수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것밖에 안 될까?’
그리고 이걸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한다.

대체로 자신의 마음에 들면 후한 점수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점수를 팍 깎아버린다.
자신이 마음대로 매긴 점수에 따라 그를 ‘너’로 대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대하기도 한다. 그의 가치 점수에 따라 그를 비난하기도 한다.
‘너는 왜 그것밖에 되지 못하는 거야?’
우리가 서로에게 점수를 매기는 데 삶의 시간을 낭비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여기까지는 사실 금수저, 흙수저에 매여 사는 우리의 이야기다.

이천 년 전보다 더 이전의 예루살렘 거리를 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표를 붙이는 일로 소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율법의 잣대를 들이댔고, 잿빛 점표를 붙일 궁리만 하고 있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었다. 찬스!

안식일에 이삭을 먹었다. - 10점 점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쳤다. - 10점 점표.
안식일에 귀신 들고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었다. - 10점 점표.
음란한 세대가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 10점 점표.

마태복음 12장에서만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4개의 점표를 붙이려고 시도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이 ‘독사의 자식들’(이 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은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마 12:8)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을 하셨다는 이유로 점표를 붙이려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붙이려 했던 점표는 결국 부메랑처럼 그들 자신의 몸에 붙어버렸다. 그들이 표를 붙인 기준은 율법이었고, 예수님의 기준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분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이들의 명칭은 ‘바리새인’이었다. 바리새인은 문자적으로 ‘분리주의자’라는 뜻이다.
<지저스 스푼>오인숙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