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성령님이 다 알아서 하시도록 우리는 그저 팔짱 끼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삶이 서로 모순적이지 않은가?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자신을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은 모터보트 대신에 요트를 타는 것과 같다. 모터보트는 자체의 동력으로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이 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요트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란 아버지께서 일하실 때 우리도 일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요트가 가장 정확한 방향으로 바람을 타고 움직일 수 있도록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고자 애쓴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해 두렵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이 운행하시지 않을 때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럴 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17)
모터보트는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그것은 기름이 있을 동안만 가능한 것이다. 기름이 떨어지면 모터보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모터보트처럼 자신의 소유와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요트처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모터보트가 아니라 요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우리는 성령님의 운행하심에 민감해져야 한다.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갖지 않는 사람은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의 운행하심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바람이 불 때(성령님이 역사하실 때)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분별이다. 우리는 바람이 불 때 즉시 돛을 올리고 올바른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돛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를 움직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역사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자신이 배를 이끌어 가려고 하거나 바람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배를 이끌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바로 성령님을 근심시키거나(엡 4:30) 소멸하는(살전 5:19) 일일 뿐이다.
† 말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갈라디아서 5장 25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에베소서 4장 30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로마서 8장 13,14절
† 기도
주님, 내 자아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모든 일에 우선순위로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뜻을 먼저 구하며 살길 원합니다. 내가 하려는 무엇보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더 사모하며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기대합니다.
† 적용과 결단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 살길 원하십니까? 매 순간 성령님의 임재를 누리며 그 분의 운행하심에 민감히 반응하며 주의 뜻이 내 삶 가운데 일어나길 간구하며 나아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