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기도해도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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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기에 접어든 우리는
다른 대안을 찾지 않고, 기도와 말씀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자 청년부는 800명으로 급성장했다.
동시대 청년 세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부흥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내게 부흥이 목표인 적은 없었다.
부흥을 목표로 하는 것 VS 부흥을 갈망하는 것,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론 극명한 차이가 있다.
부흥을 단지 수적 성장과 규모의 확장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부흥이 가능한가’를 결코 깨닫기 어려울뿐더러
실현 또한 불가능하다.
나는 늘 부흥을 갈망했고 준비했으며
이 갈망을 전이시키고자 했다.
부흥 자체가 기도의 맹목적인 목적이 되지는 않았지만,
기도로써 늘 준비했다.
이 영적 준비 태세는 중요한 자질이었다.
기도 자체가 사역이며,
기도만큼 유익한 사역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공동체의 새로운 예배 처소를 구하는 기도를 꾸준히 드렸다.
영적 리더는 언제나 ‘다음’을 위한 기도를 ‘지금’ 드려야 한다.
예배 처소를 위한 기도 응답은
1년의 긴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당시 우리가 예배하던 장소보다 더 큰 공간은 본당뿐이었다.
교회의 상황에 의해 본당을 청년 예배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신호를 찾기 위해 언제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결국 임계점을 넘었다.
2018년 3월 18일, 청년부는 본당으로 올라갔다.
한 주만에 1,560명이 모였다.
간절히 기도해도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의심과 회의감이 밀려들지만,
그럼에도 기도 쌓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눈송이가 하나하나 쌓일 때,
그 하얗고 솜털 같은 것들에서는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북하게 쌓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 무게를 지탱하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마치 수북이 쌓인 눈이 견고한 무언가를 한순간 무너뜨리듯이
기도도 불가능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책 <여섯걸음_원유경> 중에서
★ 말씀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 시편 116:2
★ 묵상
# 예배인도는 영적인 사역이다.
내가 늘 강조하는 건, 예배 인도가 영적인 사역이라는 점이다.
찬양할 때 목소리를 어떻게 매끄럽고 화려하게 낼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예배 인도자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개’ 처럼 돌진한다.
나는 시선 속에서 주님께 전력을 다해 돌진한다.
그렇게 주님을 향해 가다 보면 영혼들이 따라온다.
악기연주도 잘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우선인 적은 없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부름만으로 영혼들의 굳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땅에 떨어진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길 바랐다.
그래서 ‘성령님, 나의 스승이 되어주세요’,
‘하나님, 제 목소리에 기름부어 주세요’라는 기도는 수없이 드렸다.
내 음악적 도구들이 주님께로 나아가는 통로로 쓰이려면,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시는 것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나는 내 일을 할 뿐이었다.
계속 꿈꾸고, 계속 기도하는 것.
책 <여섯걸음_원유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