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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테마

상한 감정에 속지 않는 방법!!

이제 상감에서 벗어나자!

 2025-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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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고생과 고난이며,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누리는 덤이자 복이다. 그러니 불행해서 쓰러질 일은 없다고 자기를 다잡는 다른 언어가 우리에게 작동해야 한다. 당연한 불행에 놀라지 말고, 순간 상감을 건강한 감성으로 변화시킬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진짜 하늘이 내려준 지혜로움이다.


물 없는 곳을 헤매던 뱀은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는 아담과 그의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연구했을 것이다. ‘여자를 넘어뜨리려면 어디를 찔러야 할까? 어떻게 하면 물이 넘치는 저 여자의 집이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발견한 것이 여자의 바닥을 치고 있는 존재 값이었다.


아담의 아내는 자기 값에 불만족했다.

에덴동산의 모든 일은 남편의 말과 손으로 다 경영되고 이루어지는 상태였다. 에덴동산에서 살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여자는 자기 값을 몰랐고, 어떻게 자기 값을 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남편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존재는 기능값으로 그 존재값을 증명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값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담은 아는 것이 많은데, 자기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고, 아무 공로도 없는 자신과 자신의 값에 허(虛)가 생긴 것이다.


사람은 자기 존재의 값, 기능의 값, 성취의 값, 공로의 값이 동일하다.

그런데 그녀는 존재의 값의 허를 가지고 있었고, 아담은 하나님이 데려다주신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관계의 값의 허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갈빗대로 지어져 자기 값이 온전히 남편에게 있었던 아내, 하나님이 데려다주신 아내가 좋았고, 자기를 좋아해주기를 바라서 아내의 눈치를 살폈던 아담, 뱀은 바로 거기에 불화살을 쏘아 적중시켰다.


하와는 자기도 아담처럼 지혜롭고 싶었다.

 어떻게 저렇게 아는 것이 많을까. 그런 아담이 여호와의 지혜를 우러러본다. 그분의 모든 것을 감격스러워한다. 나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지혜로움이 탐스러운 열매가 되어 그녀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갔다.


사탄은 바로 상감자들의 우두머리다.

그의 상처는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속이고, 헐뜯고, 복수하고, 죽인다. 잔혹하고, 무섭다. 상감은 죄의 결과요, 악을 생산하는 언어 체계다. 사탄은 이 상감 언어를 애지중지한다. 상감은 더 강한 상감으로 풀어가는 사악한 공식에 의해 작동한다.


상한 아비로부터 자식이 상하면, 자식은 더 악한 상감자가 되어 아비에게 복수한다. 그런 사람이 자기 자식에게는 잘할까? 보편적으로 상처만큼의 아버지가 된다. 그 악을 끊으려고 하면 오직 예수의 성령에 점령되어 사는 방법밖에 없다.


상감 시스템은 더 큰 악을 선택하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하고, 좀 더 담대한 악을 선택함으로 복수하고, 좀 더 강한 악을 선택함으로 제압하고, 좀 더 교활한 악을 선택하여 기만한다. 그것이 상한 이 세상 시스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악한 상감의 언어 능력이다. 착하면 바보, 약하면 빼앗기고, 정직하면 진다는 공식이 작동한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과 더 강한 권력이 필요한데, 상감이 아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현실을 피부로 알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영성의 탯줄이 끊기면 선한 감성의 문은 닫히고, 오염되고 변질된 상감만 활개 친다. 상감에게는 변화란 없다. 세월과 함께 상함이 강해지면 상감은 자기를 더 보호하기 위해 송곳도 들어가지 않을 만한 단단한 갑옷으로 그를 둘러싼다. 그러면 자기 심장을 후벼파는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백 개의 감동도 부족하다. 무감각하다. 상처받기 싫어서 차단한다. 간신히 매달려서 살아간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간다.


매 순간 자신을 더욱 상함에 내어주면서까지 상한 자기 값을 더해간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기 값을 올려야 살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값을 올려보겠다고 갑질을 하지만, 모두 상감자들이기 때문에 상대의 값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갑질’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병질’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악질’이 되고 그러다가 망한다. 이렇듯 상감자는 치유가 어렵고, 변화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면 그 사람의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능이 작동되어 선한 감성이 클릭된다. 이를 2차적 언어라고 한다. 선한 영성과 감성의 콤비는 세상 그 어떤 언어도 이길 수 없는 능력과 권세와 권위의 조합이다. 사람의 1차적 언어인 상감 언어는 더 큰 상감 언어에 지도록 세팅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의 목적이요, 사람의 존재 목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정체성을 얻으면, 사람이 물질 세상의 법과 한계를 초월하도록 세팅해 놓으셨다. 그것은 바로 감성 언어를 회복하여 하나님처럼 능력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인애와 불쌍히 여김과 용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가족 감성이며 가족 언어다.


사람의 상감 언어로는 영적 세계로 진입할 수 없다.

그래서 사탄은 귀신과 미신과 여러 싸구려 영적 정보로 사람을 혼미케 하고, 상감을 작동시켜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로 얽어매서 인지 능력을 막아 인지 부조화로 상감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탄은 사람이 상감으로 작동해야만 자기에게 맹종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더욱 상하게 만들어 결국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린다. 사람을 향한 사탄의 상감은 세상 어떤 악으로 잴 수 없을 만큼 크다. 처절하고, 비참하다. 하나님이 자신은 내치고 보잘것없는 흙-사람을 아들이 되도록 그토록 많은 값을 치르셨으니 지금도 이를 갈며 억울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을 건드려서 아들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이제 상감을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상감에 속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상감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아들로서 그 기능과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상감에 속지 말자. 상감의 그림자라도 제거해버려라. ‘상처 좀 받는다고 뭐 그리 대수인가!’라고 생각하자. 상처는 교훈을 얻는 자료로 삼되 갑옷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열매 맺는 삶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영적 감성과 기능이 클릭되어 그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이 열릴 것이다. 기대하라! 서로 돕고 사랑하는 가족으로 살도록 생활의 채널이 바뀔 것이다.


- 상한 감정 버리기, 도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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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감정 버리기 20선 쓰기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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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상감에 빠져 살지 않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에게 흠뻑 빠져서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기 원하며 그 성품이 나의 삶에 열매 맺혀 주변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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