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정

당신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이신가? 심판자이신가?



양자와 칭의를 정말 많이 혼동하는데 먼저 칭의란 무엇입니까?

칭의는 법정적인 용어이고 나를 의롭다고 칭해준 분은 심판자 하나님이시며 나와 하나님 사이에 법정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나는 원래 의롭기는커녕 징역을 살고 있었는데 이제 무죄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속에 내면적 변화가 있다기보다는 유죄에서 무죄로 위치가 바뀐 것이고 무죄를 선고해주신 분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칭의 문제는 율법, 즉 법과 관계되며 법률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는 무엇입니까?

나를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심판자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다음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우리는 법적 관계지만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칭의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법적 관계로 의롭게 되었지만,

양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제 칭의와 양자가 구별이 되십니까?

대충 보면 비슷해 보여도 세밀히 따져보면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뭉뚱그려버리면 사실 구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칭의와 양자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번에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되어서 양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번의 칭의가 되고 단번에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과 칭의와 양자에 대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기가 막 태어난 것을 중생이라고 표현합시다. 그러면 이 아이가 태어난 다음 언제 내 아들이 될까요? 태어난 다음 호적에 올려야 비로소 내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부터 양자까지는 한순간입니다.

중생부터 양자까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말은 참된 중생에는 구원의 서정의 모든 과정들이 씨앗처럼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우리의 육의 눈으로 볼 때는 스펙트럼이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회개와 믿음 다음이 칭의이기 때문에 간극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지금 칭의 단계에 있는데 아직까지 양자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뭘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중생과 칭의와 양자의 공통점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황금사슬> 정대운 



나의 존재에 대해,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죄인된 우리는 한번에!! 한번에 자녀삼아주신 그분의 사랑을 알고 기억한다면 바람에 날려 흔들렸을지라도 그 뿌리가 주님안에 깊이 내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자녀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유산을 주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