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정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거에요!!



한국 방문 동안 닫혀 있던 선교센터 내 숙소는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로 가득했습니다.

풀을 뽑고 떨어진 나무가지들을 모아 태우며 열심히 청소했더니, 제법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3개월의 방치, 즉 내버려둠은 그곳이 엉망인 상태로 되어 버렸음을 보며

밭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버려둠, 즉 유기(遺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듣는 것을 매우 강력하게 거부하고,

더군다나 그분의 섭리를 간섭이나 구속으로 생각해서 더욱 싫어함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존재를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로,

그분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동일하게 간섭이나 구속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대로 하나님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기를 원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은 그저 내 삶에 복이나 주고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살 테니까

제발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제발 날 가만 내버려두세요.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겁니다.”


스스로 유기됨을 바라는 것입니다.

유기는 가장 빨리 밭을 망쳤던 것처럼 우리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망가트립니다.

주님의 손에서 우리가 놓여지는 순간, 우리는 바로 생명을 잃고 부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런 우리를, 그렇게 거부하고 완강하게 저항하는 우리를 주님이 결코 내버리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우리 주변에 정말 못된 이들을 볼 때면, 그런 사람도 주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우리 마음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당장 망해도 될 사람인데, 아니 진즉에 망했어야 할 사람인데도, 여전히 주님이 그 손을 놓지 않는 것을 보며 우리는 도무지 주님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어 불만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주님, 언제까지 그런 사람을 붙잡고 계십니까?

주님은 그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정말 모르십니까?”


그러나 주님이 인내와 사랑이 없으셨다면 우리는 진즉에 먼저 유기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적어도 나는 저 사람들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들과는 같지 않다고 자부하며 살지만, 주님의 대답은 분명히 “결코 아니라!” 일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이요, 십자가의 맹목적인 사랑이 없었으면 도무지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구원받은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우리가 어떻게 그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그 악하다고 생각한 이들을 품는 그 주님의 마음에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키워 본 부모는 잘 알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제발 날 좀 가만 내버려두세요. 날 간섭하지 마세요.

나는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때를 말입니다.


자녀들의 사춘기를 아는 부모는 폭풍 같은 시기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기에 그 순간을 인내와 이해로 용납하고 지내 줍니다.

많은 이들이 ‘영적인 사춘기’를 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도 이들을 바라보시는 마음이 동일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영적인 사춘기 순간을 말없이 용서하고 용납한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런 후에 이런 나를 깊은 미소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품에 조용히 안깁니다.

<고맙다 오늘도 버텨주어서>임동수



내 마음대로 살명 행복할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되면 다 좋을것 같은데 막상 규율과 규칙없는 삶은 무질서하고 허탈하며 공허했던 것을 기억해봅니다. 내 삶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맡기고 그 분의 말씀을 따라 갈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는것을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