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직업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직업이 신분을 의미하는 전통 속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조상의 높은 직위는 가문의 영예로 인식된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명함을 교환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명함에서 제일 중요하게 부각되는 부분도 직업과 직급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편한 직업, 쉽게 돈 버는 직업을 좋은 직업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직업을 갖는 것이 정말 성공일까?
우리는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의 자녀 세대는 아마 80-90세까지 살 것이다. 그래서 첫 직업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생 동안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이 점점 더 보편화될 것이다.
나도 직함을 따져보니 선교사, 교육가, 저술가(professional writer), 교육 사업가, 설교자, 강사, 재단 이사장 등 일곱 가지나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직업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앞으로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는다.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묻는다.
마치 이 질문을 “네 꿈은 뭐냐?”와 동의어로 생각한다.
하지만 직업과 소명은 다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삶의 모습이지 직업이 아니다.
자녀들의 인생을 어떤 직업으로 한정해서 지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들의 인생은 그들이 갖게 될 직업보다 훨씬 크다.
“청년들이여 꿈을 가져라! 비전을 가져라!”라고들 말하지만, 이 꿈은 자기가 스스로 갖는 게 아니다.
소명은 자기가 원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요셉이 자기가 스스로 꿈꾸고 싶어서 꿈을 꾼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꿈이 일방적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그 꿈은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실현’에 있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살면서 공동체에게 “지위를 가지고 사역하지 말고, 삶의 영향력을 가지고 사역하라”라고 당부한다. 지위를 가지고 사역하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 때 영향력도 끝난다.
나는 22년째 해외에서 살면서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동대학교 졸업생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사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서민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싱가포르에서 파트너와 신뢰를 쌓으며 함께 투자회사를 창업했다. 신앙을 바탕으로 새로운 땅에서 최선을 다해 그 지역을 섬기며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살다보면 때로 실패의 순간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 실패마저도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출산율은 떨어져 방송 여기저기 걱정의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유치원때부터 oo고사라고 입학 시험을 보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대학교까지 아이들은 좋은 직업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한다.
하지만 직업이 아닌 아이의 비전과 그 아이를 향한 주님의 계획에 대해 먼저 무릎꿇고 주님께 질문한적이 있는지
지금이라도 주님앞에 이 아이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주시기를 기도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