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얼 의미하나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예배하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세요.
아무리 힘들고 위기가 닥쳐와도 하나님을 찾으면 보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니, 미리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제적 감사, 미리 터져 나오는 감사를 기뻐하며 보답해 주세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감사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로 해석해도 무방할 만큼, 감사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염려스러운 상황에도 무조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럴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요.
여기서 “지각”이라는 단어는 ‘영, 정신, 내면’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평강을 부어주셔서 염려로 인해 불안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편에 서려 할 때, 세상이 가만히 두던가요?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를 따르는 성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아요.
세상 자체가 죄악 된 본성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오늘날 현대사회는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다원주의, 세속주의, 상대주의적 가치관 안에서 강력한 사상적, 문화적 흐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절대 기준을 제시하지만, 세상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지요.
절대 진리가 아닌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려 힘쓰고 있습니다. 사단은 아주 오랫동안 공중 권세를 잡고서 이런 세상을 공들여 만들어 왔지요.
교회가 절대 진리 안에서 외치는 복음과 세상의 가치관은 강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대치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세상 한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어요. 그러니 삶의 자리에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방해와 술수가 왜 없겠어요.
이런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절대 싸움닭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려는 순전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해도, 세상이 사나울 수 있습니다. 악으로 돌을 던질 수 있어요. 그럴 때 똑같이 악으로 받아치면 안 됩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십니다. 양이 이리떼로 들어가면 영락없이 죽을 것 같은데, 주님은 우리에게 양의 정체성을 가지라고 하세요.
순전한 양으로서 세상을 상대해야지, 세상이 이리라고 해서 우리가 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순전함을 지켜야 해요. 그러기 위해 입술에 항상 ‘감사’의 고백을 지녀야 합니다. 싸워서 얻는 승리의 열매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의 열매를 맛보아야 하지요.
우리의 예배가 바로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전쟁 같은 세상 한복판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예배의 자리를 찾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요. 그럴 때, 우리는 감사의 선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는 성도가 구원의 능력을 누리는 문입니다.
예배 전에 폭풍 같은 상황이 몰아쳐도, 예배자는 마음을 다잡으며 감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오죽하면 ‘예배의 문이 감사’라고 도전하겠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시작은, 무조건 감사입니다.
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할까요? 부모가 되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감사를 표현할 때, 정말 감사해서 하는 것인지, 의무감에 하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부모는 마음이 녹아요. 그런데 더 나아가, 자녀가 감사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부모를 생각하여 감사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 감동이 더 클 거예요.
우리가 의무적인 예배가 아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 그분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 받으실까요. 그것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계획에 없던 구원도 허락하실 거예요.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 이태재
고난의 시간에 감사하라니? 말이되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고민하지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불평의 말은 굴비엮듯 줄줄줄 나오지만 그 상황에서 감사의 말은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을 인정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나보다 크신 주님이 우리의 아바아버지심을 믿는다면 감사로 그 길이 열릴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