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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사는 게 수치였고 절망이었다…

 2016-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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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목사로 만드시기 전인 이십 대 초반에 나를 수치의 자리, 초라한 이삭 줍는 자리까지 떨어뜨리셨다.

그때는 사는 게 수치였고 절망이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나는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담대함을 얻었다. 아무리 내 인생이 비참한 자리에 빠진다 해도 그때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나는 귀국 후 첫해의 한여름을 노숙자처럼 교회 계단에서 지냈고, 그 다음 해에는 달동네에서 월 4만8천 원짜리 사글세방을 얻어 들어갔다. 창고를 개조한 방이었는데, 당시에 미국에서 살고 있던 누나가 한국에 왔다가 그 방을 들여다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사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노숙자처럼 복도에서 살다가 이제 하늘 밑이 아니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나는 그 달동네 집으로 이사 들어가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그 시간들을 전혀 어렵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 경험은 인생에 감격을 가져다준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글을 봤다. “사람은 권력이 주어지면 그 권력 앞에 변질되기 쉽다. 구약의 사울도, 엘리 제사장도 그래서 망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왕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변질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이 질문의 답을 “다윗이 비천한 목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냈다. 다윗은 비천한 목동으로서 인생을 시작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도 양을 지키느라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는 초라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비천한 목동으로 지낸 것이 다윗을 변질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말 잘 알고 있다. 혹시 지금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남은 생애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축복의 통로가 될 줄 믿길 바란다.

물론 비천한 출신이고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만 해도 자신의 출신이 비천하다고 해서 오히려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포악해진 왕들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비천함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급한 열등감투성이가 되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다윗처럼 우리의 비천함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겸손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열등감과 우리의 비천함이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러면 그 경험들이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 23장 1~3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하박국 3장 17,18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기 23장 10절

† 기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환경을 보지 않고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길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사는 게 어렵고 힘드십니까? 당신의 비천함을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두십시오. 비천함을 겸손함으로 축복의 통로로 인도해주실 주님을 바라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