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풀은 소에게 해로운 독을 갖고 있다. 소가 먹으면 균형감각에 이상이 생기고, 근육 조절 능력이 파괴되며, 눈의 초점이 완전히 망가져서 지극히 작은 물체를 보고 큰 두려움을 느끼거나 큰 물체의 크기를 잘못 판단해 절벽면(面)을 향해 곧바로 걸어가기도 한다.
내가 지금 한 말은 믿을 만한 지식에 근거한 말이다. 하지만 당신도 충분히 짐작하듯이 로코풀이 내 관심 분야, 아니 적어도 내 책임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내 요점을 말하겠다.
내가 로코풀에 대해 언급한 것은 내게 지극히 중요한 관심사인 다른 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위함이다. 나는 죄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죄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고 싶다.
소가 로코풀을 먹은 후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걸으면, 목장 관계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짐승은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데, 쉽게 말해서 미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실 때 인간의 본성에 선한 도덕적 잠재 능력을 심어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베푼 선행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아기의 귀엽고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았고 엄마의 아름다운 이타적 사랑을 보았다.
그런 우리가 역사책을 읽거나 일간신문을 훑어보면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을 쏴 죽이고 연기 나는 권총을 손에 든 채 죽은 남편을 내려다보는 여자, 그 여자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부드럽고 환한 표정으로 그녀의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 여자와 동일인이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도시의 다른 구역에서 온 소년의 심장을 주머니칼로 찌른 소년, 그가 그 도시의 한쪽 구석에 있는 갱단에 합류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 여동생과 재미있게 장난치며 30분을 보낸 젊은이와 같은 사람일 수 있는가?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대가를 치를 때를 기다리며 말없이 침통한 표정으로 사형수 감옥에 앉아 있는 젊은이, 그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그의 사랑하는 작은 개를 슬퍼하며 침대에 엎드려 울던 그 젊은이인가?
보통 사람의 삶이 이런 사람들의 삶만큼 극적이고 거칠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만큼 모순적인 것은 사실이다. 보통 사람도 날마다 생각이 바뀌어 변덕이 죽 끓듯 하다.
그는 친절하면서 잔인하고, 성적으로 순결하면서 성욕에 불타며, 정직하면서 속이고, 관대하면서 탐욕스럽다. 선해지기를 바라면서도 악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하면서 또 그분께 등을 돌리며,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면서 지옥으로 향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미친 것이다.
죄는 인간의 천성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독초다. 내면의 삶은 부수어져 파괴된다. 육체는 금지된 쾌락을 추구한다. 도덕적 판단이 뒤틀려서 종종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착각한다. 영원보다 시간을, 천국보다 이 땅을, 생명보다 죽음을 선택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죄의 결과를 묘사할 때 왜 그토록 생생하고 현란한 표현들을 사용했는지를 상당 부분 이해하게 된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 사 1:5,6
그런데 우리의 비유를 너무 확대해서 죄가 일종의 사고(事故)이고 질병이며 자기도 모르게 마신 독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잘못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만일 죄가 질병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구매하여 자발적으로 마신 술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알코올 중독 같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소는 로코풀을 먹고 독성을 체내에 흡수한 것에 대해 책임이 없지만, 인간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성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죄와 그 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
실로 인간은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 책임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로 그는 악을 거부하고 선을 선택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장차 틀림없이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 방법을 마련해주셨으므로 인간에게는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즉, 로마의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위해 준비하신 샘물에서 깨끗이 씻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죄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켰든 간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의 능력을 사용하여 영생을 선택할 수 있으며, 옳은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이든 간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 영의 전투, A. W. 토저
† 말씀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이사야 1:5~6
† 기도
주님께서 주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성으로 죄를 분별하기를 원하며 선악의 기준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들만 행하기 원하며 죄는 모양이라도 선택하지 않고 항상 영생을 택하기 원합니다. 주님, 나의 생각과 마음에 역사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악을 거부하고 선을 선택하며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회개하는 시간 갖기를 원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선악을 분별하며 오직 주님 기뻐하실 일들만 생각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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