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18장 10,11절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음악을 통한 심리 치료법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날도 다윗이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사울이 곁에 놓인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
창은 공격 무기다.
인간관계에는 창 던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 죽이려 하는 게 창 던지는 행동이다. 대부분 ‘말의 창’을 던진다. 말로 상대에게 심하게 상처 입힌다. 욕하고, 무시하고, 중상모략하고, 비방하며 화를 낸다. 또한 사울처럼 폭력이나 위협을 가하며 ‘행동의 창’을 던지기도 한다.
만일 그 창을 되돌려 던진다면, ‘같은 정신’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나를 모욕하면 나도 모욕하고, 나를 무시하면 나도 무시하고, 나를 비방하면 나도 비방하는 것이 같은 정신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이 던지는 창을 되돌려 던지지 않고 두 번이나 피하기만 했다. 이것이 ‘반대 정신’이다.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방하거나 욕할 때,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것!
다윗은 사울의 공격에 같은 정신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반대 정신으로 행동하는 것만 배웠다.
그 학교에는 ‘투창’(投槍)이라는 과목 자체가 없다. 오직 깨뜨림, 깨어짐, 순종 과목만 있다.
반대 정신이야말로 하나님나라의 길이다.
우리는 반대 정신으로 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둠을 물리치려고 어둠에 집중하면 부담만 커질 뿐 해결되지 않는다. 어둠을 물리치려면 빛을 비추면 된다.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붓듯이 말이다. 그러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힘센 어둠이 즉시 사라진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란, 악령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이 아니다. 악령은 근본적으로 마귀에게 속하여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짓누르고 파괴한다. 단,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활동할 수 없다.
사울이 시기와 질투와 마귀적인 행동을 택한 것은 악한 영에게 활동할 틈을 스스로 열어준 것이다(엡 4:27).
사울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세상적이며 육신적인 생각과 행동을 선택하면, 악령이 쉽게 사람을 점령할 수 있다.
“악령이 … 힘 있게 내리매”라는 건 악한 영이 강력하게 다가와 사로잡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악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는 악령이 활동하는 것을 엄숙하게 허락하신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리 떼 가운데에 있는 양’이 취할 행동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전후 문맥도 살펴야 한다. 마태복음 10장 5-15절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송하며 주신 ‘전도 지침서’다. 17-23절은 열두 제자가 전도할 때 일어날 핍박에 대한 ‘예방 지침서’다. 전도는 단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함께 행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전도’는 세상에 영향을 주는 삶이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마태복음 10장 16절이 그 비결을 말씀하고 있다. ‘반대 정신’이 그 비결이다.
“이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그들을 핍박하는 세상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는 제자들은 “양”과 같다. 험악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한 양이 전도는커녕 과연 생존할 수나 있을까? 영향을 주기는커녕 영향을 받기 십상일 것이다.
속이고, 빼앗고, 죽이길 즐겨하는 세상, 강퍅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이리 가운데서 생존하려 하다가 이리가 되어버린 양도 있다.
‘이리 떼’는 이 세상, ‘양’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우리를 가리킨다.
심각한 상황이다. 주님이 아신다.
‘뱀과 비둘기’는 지혜와 순결의 표상이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되려 영향을 주며 승리할 비결을 나타낸다.
승리의 비결은 첫째, 반대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다.
어둠을 이기려면 어둠에 집중하지 말고 빛을 비추어야 한다.
교만한 자에게 똑같이 교만으로 행하면 이길 수 없다. 상대가 나를 깔보고 짓뭉개려 할 때, 스스로 더 강하게 보이려 애쓰며 나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하려 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상대가 논쟁하며 공격해 올 때, 똑같이 논쟁으로 이기려 하면 상대의 코는 납작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
우리의 목표는 상대를 꺾는 게 아니다. 납작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넘어뜨리고 목을 밟아 승리를 외치는 게 아니다. 창을 던진 자에게 더 세고 정확하게 던져서 그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향’과 ‘변화’다. 자기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에게 같은 정신으로 대하는 건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둘째는 지혜와 순결로 행하는 것이다.
지혜는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하는 힘이다.
순결은 순수함, 착함, 정직, 진실한 태도를 말한다.
지혜는 올바른 행동이요, 순결은 올바른 태도다.
무작정 당하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단, 동기가 늘 순결해야 한다. 지혜롭게 행동하되 정직, 진실, 순수, 착함, 깨끗함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리더십의 하모니다.
만일 다윗이 날아오는 창을 받아 되돌려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다음과 같은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그는 용맹스럽고 정의롭고 불의에 대항할 줄 알며 강하여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또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20년쯤 후에는 창을 가장 잘 던지는 투창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미쳐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사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창을 되돌려 던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는 성령 학교에는 ‘투창’ 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학교에서 날아오는 창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법을 배웠다.
창을 보고 재빨리 몸을 피하는 법만 배웠다.
창을 절대 되돌려 던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일이 있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행하는 법을 배웠다. 기도 제목으로도 내놓지 않았다. 오직 그의 사정을 신원하시는 하나님께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면 창이 우리의 심장을 꿰뚫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창 던지는 법을 절대로 배우지 않는다.
물론 날아온 창을 되돌려 던지지도 않는다.
창 던지는 사람과 함께 있지 않는다. 친구로 사귀지 않는다.
창을 피한 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한다.
입을 다문다. 오직 하나님께만 말한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과목이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다.
- 왕의 지도력, 홍성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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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베드로전서 3:9
† 기도
사람과 상황에 반응하며 받은 그대로 해주지 않으면 억울하단 생각에 그렇게 심판자의 모습으로 주님을 대신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이제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어떠한 반응보다 주님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토로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기 원합니다. 주여 나의 마음을 받아주시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 제가 겪은 상황으로 인해 들었던 마음을 주님께 먼저 맡기기 원하며, 내 마음대로가 아닌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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