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옆에서 훈수(訓手)를 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둑이나 장기를 직접 두고 있는 사람보다 하수(下手)인데도 수(手)가 보이는 것은 경기를 하는 사람보다는 집착하지 않고 더 넓게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해서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젊었을 때는 아직 시야가 좁다. 집착이 심하다. 혈기가 많다. 한 가지만 알고 그것이 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시야는 좀 더 넓어져야 한다. 시야가 넓어지려면 나이가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그 사람은 평생 자기 시야로 본다. 시야가 바뀌려면 자신의 안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넓게 볼 수 있다.
내가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 배운 것은 내가 보는 안목이 아닌 하나님이 보는 안목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보는 눈과 어른이 보는 눈은 다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시는 세계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불의하다고 하고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그 사람이 진짜로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타산 때문에 분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 세상 사람들이 불평하는 이유는 다 자기중심성 때문이다. 하나님 쪽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야가 넓어지려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 쪽을 보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와 운행과 섭리를 미처 다 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실족하고 만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 우리는 잠잠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교만하고 하나님을 모르니까 자기 뜻대로 함부로 말한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 변한다.
“하나님, 쟤가 문제예요” 하다가도 ‘나도 문젠데…’ 하게 되고,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하다가 ‘아, 하나님이 일하실 텐데…’라고 하게 된다. 내가 붙잡고 원망하던 것이 하나하나 사라져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내가 억울해도 그것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 역사의 끝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고, 하나님나라에 갔을 때 내가 걸어온 인생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내가 세상과 사람들을 보고 실족할 뻔하다가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 말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 호세야 4장 6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이사야 55장 8,9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 하박국 2장 14절
† 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나의 안목을 이기적인 내 중심에서 주님의 관점으로 돌려주시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며 누리며 살길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어떤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이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진짜 하나님을 알기 위해 당신이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