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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이는 신앙의 성숙도를 떠나 신앙인이라면 평생 겪어야 할 문제다.

 2020-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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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은 뭘까? 아마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일 것이다. 이는 신앙 수준이 높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성숙자와 새신자가 서로 고민하는 내용의 영적 수준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갈등한다.

우리는 자칫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안 하고도 쉽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신앙의 성숙도를 떠나 신앙인이라면 평생 겪어야 할 문제다.

하물며 수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은 오죽할까. 그들도 치열하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엄청 고민하고 갈등한다. 정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자신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이메일이나 SNS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전공을 살려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할지(반대로 공무원 시험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진로를 알아봐야 할지), 퇴사를 해야 할지 버텨야 할지, 계속 연애를 해야 할지 헤어져야 할지, 단기 선교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교회를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친구와 인연을 정리해야 할지 끝까지 품어줘야 할지 등 하나같이 청년의 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택지들이다. 특히 20대는 자신의 진로와 결혼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할 때인 만큼 더더욱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묻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물론 ‘케바케’(case by case, 사람마다 솔루션이 각기 다르다는 뜻)다. 각자 부름 받은 사명, 영성의 수준, 처한 환경,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르기에 바른 선택을 할 순종 사안 역시 개인에 맞춰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나서기 좋아하는 기질의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나서서 말하기보다 침묵이 순종일 수 있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입술을 벌려 용기 내어 말하는 게 순종일 수 있다. 개인마다 요구하시는 자기 부인 항목이 다르다.

그러므로 옆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돕는 넓은 의미의 신앙 안내는 가능하더라도 결국 그 뜻을 분별하고 선택함은 본인과 하나님의 내밀한 일대일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타인의 조언은 그저 조언일 뿐, 신앙 여정에 유익한 지도를 얻었다 할지라도 직접 걸어가는 건 본인 몫이다.

이제 그 지도 보는 법을 알아보자. 먼저 ‘무엇을’(what)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다. 일단 고민이 복음적인지 아닌지부터 따져보자. A와 B 중에서 어떤 게 더 복음적인지 살펴봐야 한다. 사실 이 문제에 해답을 찾는 건 쉽다.

본인이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본인이 그 정답과 마주할 용기가 있느냐, 더 나아가 그 정답을 겸허히 인정하고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이다. 사람은 제대로 된 정답을 알려준다고 바뀌는 존재가 아니다. 정답은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서점이나 교회에 성경책은 널려있다. 성경 말씀을 몰라서 하나님을 안 믿는 게 아니다).

본인이 그 정답을 선택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의도적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돌린 거다. 하나님께 묻기도 전에 이미 자기 마음이 가는 선택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뜻을 구하는 의도가 정말 궁금해서 하나님께 묻는 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떼를 쓰는 방식이다. 죄를 짓기 위한 일종의 명분 쌓기다.

이런 말을 하면 처음에는 당황하면서 아니라고 하거나 기분 나쁜 내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기도하면 이내 본인이 하나님 음성의 볼륨을 일부러 낮추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복음과 반복음은 헷갈리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혼탁해진 것뿐이다. 겸허히 인정하고, 복음을 선택하자. 정답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순종 여부가 본질이다.

그럼 A와 B 모두 복음적이라고 생각이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서도 마음의 동기를 살펴야 한다. 겉으로는 복음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 선택이 자신의 신앙적 평판과 체면을 위한 것은 아닌지, 즉 이 선택이 ‘겸손 코스프레’, ‘믿음 좋은 신앙인 코스프레’의 일환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요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 6:3) 했다는 걸 홍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선택의 이유와 목적은 예수님뿐이어야 한다. 그분이 모든 주목과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그러니 자기 마음의 동기를 소독하고 어떤 것이 내가 아닌 예수님이 드러나실 선택인지, 내가 아닌 그분이 큰 영광을 받으실 선택인지를 기준 삼아 곰곰이 따져보자.

남에게 확인 받으려 묻지 말고 방문을 닫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조차 가면을 쓰지 말자. 머리로 아는 걸 외우지 말고 마음에 있는 말을 하자. 마음 구석으로 밀어놓은 내 진짜 속마음 박스를 뜯자. 내 박스 안 케케묵은 독가스가 환기 되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 이외의 것들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모두 꺼내놓으면 분별 센서 기능이 좋아진다.

하루를 잡거나 일주일 동안 시간을 정해 신약성경을 일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말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찔림이 되어 영혼을 깨끗하게 소독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서적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신앙인이 갖는 대부분의 (믿음이라 착각하는 편협한) 옹고집은 교만과 무지가 그 기반이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을수록 영혼에 유익한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마지막 단계가 제일 어렵다. 신앙의 고수들이 겪는 가장 치열한 고민인데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분별하는 문제’다(혹시 청년들 중 본인이 신앙의 고수라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의 마음을 품은 자들이 치열하게 갈등하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를 묵묵히 바라보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는 과정에서 영적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건 방치가 아니다. 마치 자녀에게 수학 공식을 무작정 외우게 하는 것보다 자녀가 그 원리를 스스로 이해하고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기다려주는 게 진정 그 아이를 위하는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은 내가 복음 안에서 무얼 선택해도 그 선택보다 나 자신을 귀히 여기신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 말은 반만 맞다. 그럼에도 선택은 중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믿음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마음의 동기와 과정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실제 선택과 그에 따른 믿음의 결과 역시 중요하다. 자칫 마음의 동기와 뜻을 찾는 과정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면 반복음적 선택을 하고도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선 안 괜찮으신데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 꼴이다.

-책읽는사자의 신앙의 참견, 책읽는사자

† 말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도행전 1장 8절

† 기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묻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모두 꺼내 놓고 기도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혼자 조용히 기도하며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