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걱정하거나 낙심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 시련 때문에 내가 더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때문에 인생의 해석이 다릅니다. 현실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보고 해석합니다. 고난에 대한 생각과 사고방식이 아예 다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련은 ‘믿음의 시험’,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을 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내가 믿는 믿음, 즉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믿고 영생을 믿느냐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시험은 낙제시키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통과해서 더 높은 단계로 진급해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의 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단계로 진급하기 위해 그때마다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여호수아도 믿음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물이 불어난 요단강에 법궤를 매고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담대한 믿음에서 오는 희락입니다. 하나님을 대강 우물쭈물 믿으면 손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적당히 믿었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없는 탓입니다.
주중에 적당히 살아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은 주일에 교회에 나와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찬송도 마음껏 부르지 못합니다.
죄의식 때문이지요. 일주일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니까 하나님 앞에 가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듭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도망치듯 나가버립니다.
그렇다고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교회에 와도 재미가 없고, 세상에 나가도 재미가 없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삶이 아니라 나가도 불편하고 들어와도 불편한 것이 예수를 믿으나 대강대강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련을 만났을 때, 그것이 어떤 시련이든지 간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나 자기의 실력, 돈과 명예, 권력이나 우상을 신뢰해서는 절대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나는 부족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 믿습니다”라는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승리의 경험을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이제 시련이 오는 것이 점차 두렵지 않게 됩니다. 시련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시련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 결과를 통해 삶의 축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에 반드시 믿음으로 합격해야 합니다.
시험 자체가 즐거운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여 한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욥기 23장10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야고보서 1장2,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