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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 작정기도 [1일~4일 묵상&기도제목]



본 도서로 
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 작정기도가  2024년 2월14일(수) ~ 3월30일(토) 사순절기간(주일제외) 진행됩니다. 
설 연휴로 책이 2월13일(화)부터 배송이 되기에 받는 시간을 고려하여 4일차 본문을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제공해드립니다. 전자책도 2월16일 출간 예정입니다. (해외 구글북스의 경우 추가 승인의 시간이 몇일 더 걸릴 수 있습니다. )

묵상과 기도






2월14일(수) 묵상과 기도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40일은 ‘노아의 홍수’ 때다. 이 땅의 온 인류에게는 심판과 죽음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에 올라탄 노아와 그 가족에게는 다시 새 삶을 얻는 구원과 부활의 시간이었다. 같은 40일이지만, 전혀 다른 운명으로 갈리는….


죄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은 육신적 존재로 전락하여 모든 생각이 항상 악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을 늘 의식했고 갈망했다.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도 여느 인간처럼 육신의 몸을 입고 발을 땅에 딛고 살았지만, 육의 생각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였다.


육신의 생각과 세상 풍조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그분의 뜻을 붙들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가득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그런 노아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과 계획을 알려주셨다. 죄가 만연한 이세상을 끝내기로 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한 노아와 그 가족만을 위해 구원의 길을 내셨다. 그것은 ‘방주’였다.


그러나 너하고는, 내가 직접 언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모두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창 6:18_새번역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말씀하셨다. 노아는 믿음으로 100년 동안이나 묵묵히 방주를 지었다.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준행했다. 그러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게 보았을 것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큰 비가 내릴 거라며, 산꼭대기에 커다란 배를 짓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아 역시 그런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에 때로 두렵고 외로우며 손이 약해지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날마다 그가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셨고, 그가 흔들리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도록 붙들어 주셨으리라. 그 은혜를 힘입어 노아는 임무를 완수했다.


때가 차매, 심판의 날이 임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다. 육신적 존재는 모두 죽었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약속대로 방주에 올라탄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얻었다. 육은 사라지고, 영이 살아남았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믿음의 사람, 노아에게 베푸신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구원의 방주이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육의 생각이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다.


이 세상도 노아의 홍수 때처럼 심판의 날을 맞이할 것이다.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다. 그날엔 두 운명으로 갈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에 올라탄 사람은 구원을 얻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심판받을 것이다(마 24:37-39).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아다. 세상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한복판에서, 믿음으로 방주를 지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히 믿는 존재다. 이 세상을 지으셨고 끝내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분께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진리를 확실히 믿는다.


그러니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세상이 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의 원리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듯, 우리도 말씀으로 삶을 세워나가야 한다.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자. 그러면 주님이 만나주신다. 주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삶을 지어가도록 도우신다. 그럴 때 많은 영혼이 우리를 통해 주님을 만나며 구원의 방주에 오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육신적 존재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길 간절히 바라신다. 삶터, 일터, 가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 시대의 노아로 살아내자.




Let’s Pray


1 나는 이 시대의 노아인가요? 하나님의 뜻보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는지 돌아보며, 말씀으로 조명해주시길 기도합시다.





2 삶의 현장에서 내가 지어야 할 방주는 무엇인가요?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하며, 순종의 고백을 올려드립시다.





3 아래 말씀을 소리 내어 선포하며, 내 고백이 되길 기도합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개역개정



Prayer


하나님, 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노아의 홍수 40일 동안 인류가
두 운명으로 갈라진 걸 보았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자는 죽었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자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저도 이 시대의 노아로 살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생각이 죽고

성령충만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해주세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행복에
눈이 멀어 세상의 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그 기쁨과 감사가 제 안에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노아가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것처럼

제가 지어야 할 방주, 곧 사명을 깨닫게 해주세요.


세상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붙들리게 해주세요.

오늘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만을 붙들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월15일(목) 묵상과 기도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으로 이끌었던 모세의 삶에도 ‘40’이 등장한다. 이 수를 빼고는 그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40은 의미심장하다. 우선 그는 나일강에서 건져져 애굽의 왕자로 40년간 자랐다. 이후 광야로 도주해 목자로 살아낸 세월도 40년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40년간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그렇게 세 번의 40년을 마치고, 모세는 120세에 가나안 땅 목전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생애 첫 40년은 나일강에 던져져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운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육신의 생명’을 얻은 삶이었다. 게다가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으니, 비록 친자는 아니어도 화려한 왕궁 생활을 하며 높은 학문을 연마할 수 있었으리라. 그는 권력을 누리며 힘의 원리도 배웠을 것이다. 그 힘으로 자신의 콤플렉스이자 무거운 사명이기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힘과 의’는 철저히 실패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린 그 생명을 가지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부유하고 넉넉하게 혹은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며 세상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공의와 불의를 정의하는 세상의 논법을. 그 위에 하나님의 성품이 아닌, 죄 된 인간의 성품으로 자기만의 철학을 쌓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하는 ‘내 힘과 의’다.

광야로 도망친 모세의 두 번째 40년은 그의 정체성이 다 무너져 내리는 시간이었다. 그는 왕자의 삶도, 치열하게 고민했을 사명도 잊고, 그저 재야에 묻혀 사는 양치기이자 평범한 가장이 되었다. 이전에 자기 의와 힘으로 살고자 했던 자아(육신적 생명)가 완전히 낮아지고 죽는 시간이 었으리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광야의 시간’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의 이름 앞에 붙은 여러 수식어가 위협받거나 사라질 때 우린 혼란에 빠진다. 그 수식어에 왜 그토록 집착하고 에너지를 쏟는지, 왜 희비가 갈리는 파도를 넘실넘실 타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춥고 외롭고 황량한 광야에서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모세는 마지막 40년을 맞이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다. 노인이 된 그를 찾아오시어 애굽의 바로 왕을 상대하는 어마어마한 출애굽 프로젝트에 부르셨다. 그의 대답은,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였다. 스스로 그 큰일에 적합한 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과거에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기고만장했던 청년의 때를 지나, 연약한 노인이 된 자신을 부르시다니! 하지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때’였다. 오직 하나님만, 여호와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최적의 시간. 모세는 비로소 80세에 힘의 원리가 아닌, 그의 의와 열정도 아닌, 오직 여호와의 능력으로, 그분의 사랑에 붙들려 진짜 사명을 살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독히도 완악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며 끝내 이스라엘을 건지신, 더 끈질기고 포기를 모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경험했다.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믿음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신 기적의 하나님도 맛보았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기 위한 광야학교 수업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로서 온전히, 맹렬히 쓰임 받았다. 실로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40년이었다


모세는 이렇듯 ‘40’의 축을 따라 변화하고 성장했다. 그의 삶을 디자인하고 이끌어가신 섭리를 살펴보니,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즐겨쓰시고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숫자’인 것 같다.


우리가 시작한 40일 작정기도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변화와 성장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육신의 힘으로 쌓아 올린 것들이 주님 안에서 재해석되고, 오직 주님께 의뢰하고 공급받는 광야의 유익을 배우며, 길을 내시는 그분을 경험하고, 아버지의 뜻이 내 뜻보다 높아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Let’s Pray


1 내 힘과 세상 기준을 따라 세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무너지길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 뜻을 흠모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2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사모합시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아버지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아버지의 애통하심이 내 애통함이 되길 기도합시다.








3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나요? 사방이 가로막힌 듯한 문제 가운데 놓여있나요?


모세처럼 믿음의 지팡이를 들어 주님께 부르짖읍시다. 길을 여시고 건져주소서! 주님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기쁨과 안정감을 구합시다.







Prayer

하나님 아버지,

모세의 삶을 이끄셨듯이 제 삶도 이끌어주세요.

나일강에 던져져 죽을 운명이었던 모세를
주님께서 건지셨듯이 제게도 생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제 삶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온 마음 다해 찬양하길 원합니다.

모세가 실패와 고난을 겪으며 그의 힘과 의가 무너졌듯이
저도 제 힘과 의를 내려놓습니다.

가시떨기 앞으로 모세를 찾아오셔서
새로운 사명을 주신 주님, 제게도 갈 길을 보여주세요.

지난 삶의 성공과 실패가 주님 안에서 정렬되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뒤로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으로 홍해가 가로막을 때
모세가 믿음의 지팡이를 들어 기도했듯이
저도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40일 작정기도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육이 죽고 영이 사는 믿음의 시간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월16일(금) 묵상과 기도  

모세는 구름 가운데를 지나, 산 위로 올라가서, 밤낮 사십 일을 그 산에 머물렀다. 출 24:18 새번역


40일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까이 부르셨다. 그를 대면하시며 그가 지어야 할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떻게 짓고, 누가 섬기며,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할지 아주 세세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지켜야 할 율법을 두 돌판에 친히 새겨주셨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한 주님의 아이디어였다.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고 사랑이었다.


한편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한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했는가? 모세가 눈앞에 보이질 않자, 그를 통해 바라보던 하나님도 놓쳐버렸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에 잡히는 게 없으니 몹시 불안하고 공허했다. 결국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다른 신(우상)을 만들었다. 아론이 만들어준 금송아지 신상을 보자 백성들은 마음이 놓였다. 번쩍이는 금 신상 앞에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뛰놀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줄 신이라도 되는 듯 인간의 손으로 만든 금덩어리를 경배했다.


같은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앞에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춤추었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머무르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이 땅에서 육신의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은 우상을 탐닉했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은 말씀에 붙들려 육신의 결핍도 초월했다.


우리도 겉으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실상은 혼과 육을 따라 살아간다. 안정감을 줄 대상으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어낸다. 물질, 명예, 관계, 강박, 음란, 탐심에 집착하며 기쁨과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 그것이 사라질까 봐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사라지면 두려워서 견디질 못한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는다. 욕망과 탐심으로부터 자유롭다. 풍족하게 부어주시면 감사하고, 궁핍에 처해도 견뎌낸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든다. 하나님의 뜻이 그를 살게 한다. 말씀이 그 영혼에 힘을 부어주시며,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마 4:4). 모세도 그런 영의 사람이었다. 40주야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 얼굴에서 빛이 났다.


모세는 거기서 주님과 함께 밤낮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모세가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출 34:28,29 새번역


사람을 진정 빛나게 하는 것은, 육신의 힘이 아니라 영혼의 빛이다. 그빛은 주님을 대면하는 자, 말씀을 믿으며 영혼이 그 말씀에 붙들린 자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바로 우리 주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빛이다. 이는 감히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다. 그 영혼의 빛은 어둠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이 주님을 보게 하며, 그들을 아버지께로 이끈다.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참된 양식으로 삼고, 그 힘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날마다 주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바라보며, 주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삶 가운데 빛나길 소망한다.




Let’s Pray


1 두려움과 공허함 때문에 만들어낸 우상이 없는지 돌아보고(돈, 명예, 탐심, 관계, 강박, 음란 등) 그 우상을 통해 안정감과 기쁨을 누리려던 어리석음을 회개합시다. 즉시 돌이켜, 오직 주님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길 기도합시다.





2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영혼의 양식입니다. 내 영혼에 힘을 주어 살게 합니다. 아래 말씀을 소리 내어 읽으며, 예수님의 말씀이 내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마 4:4 새번역




3 내 영혼이 주님의 빛으로 빛나기를 기도합시다. 그 빛이 주변에 주님을 모르는 영혼에게 비춰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Prayer

제 영혼을 먹이시고,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다른 헛된 것들로 채우려다가, 정작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육신의 정과 욕심의 더러운 것들을 이 시간 버립니다.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쫓습니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주를 바랄지어다!

제 입술이 주님의 말씀을 읊조리게 하시고
제 영혼이 말씀을 먹어 강건해지게 해주세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된 양식을

날마다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해주세요.

아버지께서 비춰주신 그 빛으로 다른 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길 원합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게 해주세요.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전하게 해주세요.

제 영혼의 잔에 아버지의 사랑이 차고 흘러넘쳐

이웃에게 흘러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월17일(토) 묵상과 기도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각 지파의 지휘관 한 사람씩, 12명의 정탐꾼을 파견했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둘러보고 돌아와 보고했다.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보았음에도 정반대의 의견으로 갈렸다. 먼저 10명이 입을 모아 말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긴 한데, 그 땅의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며 많은 이방 사람이 산지와 해변과 요단 강가에 이미 살고 있더이다!”


비어있는 땅이 아니라서 바로 들어가 살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곳 거주민이 강하다고 단언했다. 그들이 가나안의 ‘현실과 사실’을 말하는 듯했지만, 실은 그들 안의 ‘두려움과 낙심, 부정적인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이들과 의견을 달리한 2명 중 갈렙이 나서서 말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격려하였다.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민 13:30 새번역


그는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을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상기시켰다. 말씀의 렌즈로 그 땅을 바라보니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루실 승리가 그려졌다. 갈렙의 힘있는 격려에도 나머지 10명은 더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본 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민 13:31-33 새번역


심지어 그들은 그 땅을 악평했다. ‘축복의 땅’을 ‘저주의 땅’으로 폄하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육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한 불신만을 강력히 주장했다. 소위 ‘현타’(현실 자각 타임,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는 시간)가 온 거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육신의 오감으로 느끼는 현실 세계가 더 크고 두려웠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 12명이 각 지파의 우두머리이자 리더였다는 사실이다. 그중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언약의 말씀을 더욱 견고히 붙들며 승리를 선포했고, 나머지는 현실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압사 당할 지경이었다. 이 두려움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번졌다. 몸은 출애굽 했지만, 영혼은 여전히 애굽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 두려움이란 전염병이 무섭게 퍼졌다. 그래서 집단적으로 밤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짐승처럼 부르짖었다.


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꺼내 와 왕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려고 축복의 땅 앞으로 옮겨 왔건만, 그들에게서 육신의 생각이 끊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되려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놓는 모습이 참담하기까지 하다(민 14:1-4).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은 달랐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민 14:7-9 새번역


그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그 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땅이 심히 아름다웠다. 크고 견고한 성읍도, 그 땅의 백성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모든 것 위에 크신, 왕 되신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니 담대했고, 기쁨과 기대가 흘러넘쳤다.


그들에게는 말씀이 ‘실상’이었다. 그 결과 믿음의 두 사람은 말씀을 향한 믿음대로 약속의 땅을 밟았고, 헤브론을 정복하는 은혜를 누렸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눈에 보이는 걸 믿은 자들은 결국 그 믿음대로, 그들이 말한 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


우리 삶에도 때로 ‘현타’가 온다. 마음이 눌리고, 낙심한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너무도 커 보이고,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두렵고 막막하고 숨이 턱 막힌다. 그럴 땐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풀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안심하라. 그 두려움은 진짜가 아니다. 원수의 속임이다. 우리를 겁박하는 종이호랑이일 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 힘이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럴 때는 얼른 시선을 돌려 ‘말씀의 안경’을 써야 한다. 말씀이 실상이 되도록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한다. 우리의 거짓된 육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이기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렌즈로 삶을 바라보자. 입술로 믿음의 말을 선포하자. 그 말씀대로, 말한 대로 아버지께서 길을 내실 것이다




Let’s Pray


1 10명의 정탐꾼이 쏟아냈던 불평과 두려움이 내게도 있나요? 나를 짓누르는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합시다.





2 아래 말씀을 내 영혼이 듣도록 소리 내어 선포합시다. 이 말씀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임을 굳게 믿고 기도합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개역개정



3 위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삶의 문제를 바라봅시다. 어려움 가운데서 나를 건지시고, 길을 내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기도합시다










Prayer


하나님,

가나안 땅을 정탐한 두 부류의 사람 중
저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제가 붙들고 있는

애굽의 관습과 유혹을 뿌리치길 원합니다.

갈렙처럼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가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말씀으로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세요.
믿음의 눈이 열릴지어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심히 크고 놀라우신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성령님,
제 생각과 마음을 다스려주세요.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말을 올려드리는 제 입술이 되길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 작정기도가  2024년 2월14일(수) ~ 3월30일(토) 사순절기간(주일제외) 진행됩니다. 자세히보기 https://cnts.godpeople.com/p/73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