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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염려가 자꾸 생겨요...

주변을 둘러봐도 요즘 경기가 좋다, 살만하다라는 이야기보다는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더 쉽게 듣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수없이 되내어 보지만 상황을 바라보면 마음이 떨리고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을 주님의 말씀에 비춰 다시 바라보길 원합니다. 우리 가정을 먹이고 입히고 살리시며 보살피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돈 자체는 신이 아니다. 그저 도구다.
단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섬기게 되면 그 태도가 돈을 신으로 변신시킨다(딤전 6:10).
이 신의 이름이 ‘맘몬’이다(눅 16:13).
그리고 ‘맘몬 숭배자’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염려’다. 돈의 많고 적음이 평안과 염려를 가르지 않는다. 돈을 사랑함이 염려를 만든다.

맘몬뿐 아니라 어떤 우상에게든 마음을 바치면 염려와 불안이 먼저 찾아온다. 마땅히 경배받고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분을 예배할 때는 평안하다. 담대함과 기쁨이 넘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반면, 우상을 예배하면 불안하다. 두려움과 염려가 넘친다. 모든 것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다. 분주하다.

돈을 선하게 대할 능력이 없으니 아예 가난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역시 비성경적이다. 탐식 절제가 안 되니 아예 굶어 죽겠다는 태도와 같다. 다시 말하지만 돈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돈이 적다고 맘몬 숭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적은 돈일지언정 마음에 돈 때문에 일어나는 ‘염려’만 있어도 맘몬 숭배로 치달을 수 있다.

내가 만난 사역자들과 크리스천은 대부분 가난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거룩한 것도 아니었다. 가난은 거룩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목회 현장에서 내가 만났던 가난한 이들은 하나같이 돈 문제로 ‘염려 중’이었다.

평안이 예배의 효과라면, 염려는 우상숭배의 효과다.
가난하고 말고가 맘몬 숭배 진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돈에 대한 염려의 태도가 맘몬 숭배인지 아닌지를 엿보게 한다.

염려와 우상숭배는 한통속이다.
만약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는 재물로 우상숭배자가 된다. 그런 이들에게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24).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앞서 말씀하신 ‘보물’을 ‘재물’로 바꿔 표현하셨는데 성경 원어를 보면 ‘맘몬’(μαμωνᾶς)이다. 이는 우상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주님은 추가로 맘몬 숭배자의 마음에 대해 더 말씀하신다. 맘몬을 섬기려는 그 마음의 모습은 ‘염려’다.

이렇게 자문해보라.
나는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가? 혹은 재물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염려 때문인가? 아니면 예수님 때문인가?

만약 이에 “염려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우상숭배 중이다.
돈 염려와 맘몬 숭배를 연결하셨던 예수님이 이번에는, 돈 염려를 기도에 연결하셨다.
다시 말해, 돈 염려로 우상숭배 중이라면, 같은 염려에서 출발해서 기도하면 된다.

죽을 일로 기도하면 산다. 돈 염려가 돈 쌓기로 이어지도록 두지 말고 그 대신 기도를 시작하면 된다.
내 염려든 네 염려든 똑같다. 살리는 기도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만약 생활비 때문에 고민하는 가장이라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님! 제가 무능력합니다. 저는 경제력이 없습니다. 무능한 남편이자 아빠입니다. 저를 도우소서. 염려가 많이 됩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과 의식주를 제공하지 못해 염려가 됩니다. 어디에 돈이 있으며 이 불경기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염려가 됩니다. 아니, 염려가 넘치고 있습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염려 중인 저를 용서하소서. 이 염려 때문에 맘몬 숭배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주님 명령대로 제 기도 제목을 바꿉니다.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소서. 이 무능력한 가장에게 믿음의 관점을 주소서.
주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고 입히시듯, 저희 가정도 돌보실 것을 믿게 하소서. 아니 믿습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말씀이 제 느낌보다 우선인 것이 당연합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제가 말씀대로 이뤄질 줄 믿습니다. 또 반복합니다.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 아내를 먹이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 자녀들을 키우실 것입니다!
저희 가정의 진정한 가장이 당신이십니다! 저는 주님 대신 이 가정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주님이 저희 가정을 이끌어주고 계심을 보는 믿음의 눈을 주소서. 저희 가정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저희 가정에 주님의 의가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저희 가정에 주소서! 제게 있는 알량한 경제력이나 무능력으로 이 가정이 좌우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나라, 주님의 통치가 저와 제 식구들의 마음 마음에 가득해지게 하소서…!”

염려는 두려움에서 온다. 돈에 대한 염려는 돈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낼 죽음의 그림자와 같은 일들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죽음과 그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그분이 생명을 다 만드셨고, 죽을 영혼들도 살리셨다. 그분이 죽음보다 강하시다. 앎과 믿음은 연결된다. 그분을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올바른 지식이자 신앙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흔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거쳐 염려로 나타난다. 반면 믿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다르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향한다.
<살리는기도>송준기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