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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에게만 하는 말인데.. 있잖아.. 그 사람 말이야..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명절, 말로 상처 받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때도 있습니다. 친하다고, 혹은 어색해서 하는 이야기가 주님 보실 때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항시 깨어 입술을 제어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글쎄, 내 말을 들어봐요. 그 집사는 왜 그렇게 거만을 떠는지….”
‘아이고, 또 시작이시네.’
나는 교회의 목사님에게서 한 자매님을 소개받았다. 초신자인데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분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있는데 험담하는 옛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나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성경공부 중에도 틈만 보이면 남의 험담을 하려 했다. 초신자라서 그러려니 했으나 도가 지나쳤다. 조언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한계가 있었다.

나는 성경공부하는 날이면 아침 금식을 했다. 성령께서 그 자매님에게 직접 깨달음을 주시길 기도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으나 오늘도 여전히 험담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니 걱정스러웠다.
험담을 계속한다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전적으로 양육을 맡은 내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하니 낙심되었다.

그날의 공부를 마치고 저녁에도 금식하며 주님 얼굴을 구했다.
‘주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 자매의 험담하는 습관을 고쳐주소서.’
주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더욱더 주님을 부르며 도움을 구했다.
‘주님, 비판하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자매에게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눈을 주옵소서.’ 주님은 또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주님, 이 자매가 남을 비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고쳐주세요.’
주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그런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주님이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가 남을 험담하지 않기 위해 말수도 줄이고, 심지어 험담을 피하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도 피하다가 오해받은 적도 있다는 걸요.’
‘잘 생각해보렴, 너와 네 남편이 침대에 누워 무슨 말을 하는지.’

그날 이후, 나는 우리 부부의 침실 대화를 살폈다. 하나님이 옳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험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험담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았다.

남편과 대화 중에 하는 작은 험담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험담하는 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자매가 험담을 줄였다.

은혜롭게 예배를 마친 후에 은혜롭지 못한 험담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끝까지 은혜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를 많이 고심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일주일 동안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나누는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말을 하도록 부지런히 가르쳤다. 심지어 만화영화 〈밤비〉에 나오는 대사를 누누이 강조했다. “만약 네가 좋은 말을 할 수 없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런데 이처럼 평상시 남을 험담하는 일을 극히 싫어한 우리 부부가 어찌하여 침실에서 우리끼리 아무렇지 않게 남 험담을 하게 되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서로 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친밀감의 표시로 비밀스런 얘기를 하기 좋아한다. 또는 친해지고 싶어서 비밀스런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그 비밀스런 얘깃거리를 대부분 제삼자를 험담하는 데서 찾는다. 친밀함의 매개체를 굳이 남 얘기로 삼아야 했을까?
나는 남편과 함께 이 부분을 개선하기로 했다.
<하나님 부부로 살아가기>홍장빈 박현숙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