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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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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시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

 2016-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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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활력 있는 영적 삶을 유지하면서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락하는 도덕, 악한 법, 세계적으로 점점 더 환영 받는 인본주의 이상(理想) 등 낙담할 이유가 충분히 많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을 보고도 하나님의 나라는 중단되지 않으며, 주님이 이기고 계시다는 변치 않는 소망을 가지고 살려면 ‘다른 관점에서 움직이고 다른 현실을 가져오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한 주님의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돌려놓을 것인가? 우리가 “세상의 빛”(마 5:14)이라 하신 예수님의 선언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소망’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오랫동안 한 번도 전쟁에서 진 적이 없고, 오로지 돌파(breakthroughs)만을 알고, 앞으로 올 돌파만을 아는 하늘에 대한 소망, 예수님이 음부의 권세가 자신의 교회를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마 16:18 참조) 진정 그 말씀 그대로를 의미하셨다는 그런 소망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모자라는가? 영광을 응시하고, 영광으로 변화되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을 덮는다는 말씀의 성취 자체가 되는 공동체, 불같이 뜨겁고 하나님과 친밀하며 주위에 영향을 주는 진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시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깨어 가능성을 믿어야 하지, 한계나 일시적 방해나 어려운 상황에 우리 자신이 소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완전히 살아나야 할 때가 되었다.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작은 것에 만족해버렸다. 우리는 어린양께 그분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짧은 주일 예배를 드려왔다. 신앙에 있어서 ‘급진적’이라는 표현은 시끄럽거나 크거나 혹은 독특한 것으로 정의 내렸고, ‘헌신’은 허술하게 정해놓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 정도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소망은 있다. 아주 큰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깨어 일어나 가야 할 목적지로 온전히 걸을 것이다. 역사 어디에서나 불붙은 ‘남은 자’(remnant)들은 있었고 우리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시대가 독특한 이유는 이 불로 가득 찬 군대의 폭과 넓이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변화될 수 있고, 잃어버린 영혼들은 복음을 들을 수 있으며, 가장 완고한 마음도 부드러워질 수 있고, 극심한 중독자도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열방들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돌파 속에 살아야 한다. 이보다 경(輕)한 것이라면 다 우리의 유산을 경멸하는 일이요, 갈보리의 승리를 값싸게 만드는 일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6장18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말라기 1장11절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 시편 67편5~7절

하나님 나라는 중단되지 않으며 사망의 권세는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 상황과 문제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 주시는 소망에 집중하길 원합니다. 그 소망을 붙잡고 갈보리의 승리를 외치며 세상 가운데 나아가겠습니다. 주의 영이 제 영혼을 덮고 주의 영광이 온 땅 가운데 펼쳐지길 소원합니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