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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싸우지 않고 최고의 싸움꾼이 되는 방법

 2020-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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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19-22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이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이삭의 이야기는 아주 짧다. 이삭에 대한 설교는 많지 않다. 이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내게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이삭을 통해 깨우쳐 주셨다.

우리 집안의 DNA 속에는 싸움꾼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게도 있는데, 그것이 목회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방해가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잘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큰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집안에는 가훈이 없다. 그런데 만일 가훈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정면 돌파, 싸우면 7일 도망가면 40년!” 이것이 우리 집안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싸움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보통 세 갈래로 나뉜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망가서 지는 사람이 있고, 싸우다가 지는 사람이 있고, 싸워서 결국 이기는 사람이 있다.
창세기 26장 말씀을 읽다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이삭은 이 세 유형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도망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뭐가 다르냐면, 이삭은 싸우지 않았지만 이겼다.

26장 후반부를 보면 이삭을 시기하여 쫓아다니며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발로 찾아와 평화조약을 맺자고 한다. 자기들이 이삭의 우물을 메워서 이삭이 망할 줄 알았는데, 이삭이 옮겨가는 곳마다 우물이 터지는 것이다. 생존과 직결되지만 평생 한두 개 파기도 힘든 우물을 이삭은 가는 곳마다 일곱 번이나 터뜨렸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블레셋 왕은,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 주심으로 이긴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도리어 이삭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9). 그래서 자기 종족을 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최상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줄 것 다 줬는데도 이기는 것이 최고의 싸움꾼 아닐까? 그래서 나는 ‘싸우지 않고 늘 이긴 사람’이라고 이삭을 정의하고 싶다.

그런데 세상에는 싸우다가 지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지혜와 축복이 아니라 비겁한 것이다. 옳지 않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일은 하고, 할 말은 하는 것이 분명 필요한 때가 있다.
그러나 본문이 가르쳐주는 것은 싸움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양보하고 손해 보고 져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 이삭이 그랬다.

싸워서 이겨야 할 싸움이 있고, 싸우지 않고 져야만 이기는 싸움이 있다. 싸워서 이겨야 할 싸움은 싸워야 한다.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싸움까지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 것이다.

이삭은 왜 싸우지 않았을까? 비겁해서? 연약해서? 아니면 성격이 너무 좋아서?

이삭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나는 다른 우물을 파도 돼. 네가 이 우물을 가져. 하나님이 복 주시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가도 잘 살 수 있어.’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양보했던 것과 같은 그런 믿음의 바탕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늘 이기는 것만 생각하며 살았다. 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질 줄을 잘 모른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좀 나이가 들고 보니 지는 것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넓어진다. 그냥 져줘도 되지 않을까? 좀 양보해도 되지 않을까?

질 줄 모른다는 것은 내가 약하다는 뜻이다.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가? 조금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고 손해 볼 줄 아는, 이삭처럼 넉넉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질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이삭을 닮아가야겠다. 지는 것도 연습해봐야겠다. 그러나 싸워야 할 것까지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치 않겠다. 싸워야 할 것은 싸우고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은 양보하여 도리어 이길 줄 아는 그런 근사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 말씀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창세기 13:9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편 73:23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 시편 72:4

† 기도
주님, 내가 싸워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 주시고 이기고자 하는 삶이 아닌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나의 분을 의롭게 여기지 말고 무조건 싸워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묻고 나아감으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 세상 가운데 화평케 하는자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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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