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4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세기 37장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셉의 이야기는 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행동으로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 받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야곱도, 요셉도 실수를 많이 했다. 첫째로 제일 잘못한 것은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이다. 둘째는 요셉이 야곱에게 형들의 잘못을 일일이 고자질하고, 자기는 좋지만 형들이 듣기에는 기분 나쁜 꿈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애굽 땅에 팔려 가 평생 종노릇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야곱은 늦게 낳은 아들인 요셉을 더 사랑하여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다. 그것은 차별이었다. 차별처럼 세상에 나쁜 게 없다. 차별은 악이다. 그 차별 때문에 위험하고, 살기 힘들고,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분쟁과 원망과 불안이 난무하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닐까?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차별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람을 차별하는 마음이 아예 사라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차별이, 채색옷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망가뜨려놓고 말았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 남보다 공부 더 잘하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또 돈 벌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출세하려고 수고한다. 그런데 우리가 돈 벌고 공부하고 출세하려는 그 본심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차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난 너와 달라. 난 너와 다른 사람이야.’ 이렇게 차별하고 싶어서, 채색옷을 입고 싶어서 공부하고 돈 벌고 출세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예수도 그렇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누가 높으냐를 가지고 다툼을 벌였다. 그게 바로 차별이다. ‘난 너보다 더 높아. 난 너와 달라. 내가 너냐?’ 이런 본심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차별을 가르치지 않는다. 절대로 차별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든 부한 자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그런데 형제간에 서로 깔보고 미워하고 차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내가 보기에 모든 사람이 다 공평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 머리가 똑똑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것이 구별은 되지만 차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개인적, 사회적 차이로 차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기가 좀 더 노력하고 기회를 얻어서 또는 야비한 짓을 해서라도 자기 혼자 채색옷을 입고 과시하며 남을 깔보는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 그것을 즐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그런 마음과 싸워야 한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너는 세상의 복이야. 너로 인해 세상이 복을 받아야 돼”라는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되어 세상에 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또한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나라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나라이다.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다.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다. 그런데 서로 무시하고 깔보고 시기하고 찌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람 깔보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사이좋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나라이다. 자본주의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사회라면, 사회주의는 그것에 반발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강한 사람을 공격하고 빼앗아 평등을 이루자는 사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공평하자, 차별하지 말자’라는 사상은 비슷한 것 같지만 방법이 다르다. 약자가 강자의 것을 빼앗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기쁜 마음으로 가진 것을 내놓아 약자를 섬김으로써 아름다운 공평한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요셉처럼 자기만 채색옷을 입고 자랑하며 형들을 무시하는 것이 뭐 그리 잘난 일이겠는가? 하지만 솔직히 내 본성에도 나만 채색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생활을 하고 싶은 본성이 나라고 왜 없을까?
하지만 세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평생 그런 마음과 싸우며 살아가고 싶다. “너 공부 왜 해? 왜 그렇게 돈 열심히 모아? 왜 그렇게 열심히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해?” 누군가 물으면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애는 데 그 힘을 쓰고 싶어서”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근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 말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태복음 20장 26~28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빌립보서 2장 3~5절
† 기도
저도 모르게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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