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정

그래, 아빠가 지금 달려갈께...



내 딸들은 아직 어리다. 둘 다 나를 자주 찾는다.

주로 두 가지 경우에 나를 부르는데, 하나는 놀아달라고 할 때고, 다른 하나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만났을 때다.


서재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생 둘째가 거실에서 급히 “아빠”를 외쳐 불렀다.

“아빠~ 아빠아~!!”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놀란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아이는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아빠, 아무리 찾아도 없어… 아빠~.”


아이는 거실에서 색칠 놀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꼭 필요한 분홍색 크레파스가 제자리에 없었다. 아이에게는 큰일이었다. 분홍색이 없다면 나의 공주인 딸은 색칠 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중년 남성이자,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선교적 교회 모임들의 대표이며, 여러 세미나와 집회의 주 강사이고, 여러 책도 쓴 나는 조그마한 크레파스의 빈자리를 무시했을까?

그저 설교 준비가 더 중요한 일이라며 분홍색 크레파스를 찾아 울먹이는 딸을 모른 척했을까?

아니면 별일 아닌 것, ‘없어진 분홍색 크레파스’를 찾아주었을까? 답은 말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것이다. 거실 구석구석을 뒤져서 결국 찾아주었다.


그때 나는 설교 준비와 크레파스를 비교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크레파스가 문제였지만, 내게는 아이가 날 찾고 있다는 기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유치원생 딸이 겪는 문제란 내 눈에는 죄다 별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사소한 문제가 무조건 크게 다가오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가 나를 의지한다는 게 내 행복이다. 그리고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무한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인간사 거기서 거기다. 내 딸과 나 사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자식이 비슷하다. 자식은 아빠의 거의 전부다. 그 사랑하는 아이가 나를 애타게 필요로 한다는 건 내 존재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내 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해결했을 거다. 아이가 아빠를 의지한다는 건, 그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빠의 행복이다. 만약 그녀의 문제가 너무 커서 아빠인 나조차도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슬픈 일이다.

<부르짖는 기도의 비밀> 송준기 P134



만약 아빠가 자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안흔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그 나이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던가.. 하지만 그때에도 부모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것에 마음이 쓰일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이보다 더 크시겠죠? 하늘 아버지를 온전히 '아빠'라 부르짖으며 그분께 의지하며 한걸음 한걸음 걷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