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을 만한 믿음 (행14장)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14:8-10)
사도바울이 루스드라에서
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기록한 본문입니다.
바울은 그 앉은뱅이를 주목하며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시 바울은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란
과연 어떤 믿음인지가 궁금해져서
전후 구절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두 가지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1.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된
이 사람은 지금까지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앉은뱅이로 살아가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자신이 일어서야겠다는 필요성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모습은 전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일말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영이 죽어있는 인간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2.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어떻게 이 앉은뱅이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와서 앉아 있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에
마침 바울 일행이 도착해서
설교를 곧 시작했을 수도 있고,
바울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팔로 몸을 힘겹게 끌며 찾아와
복음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주목할 정도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나 갈급해 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눈망울 속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감지하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
놀라운 기적을 베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타이밍과 환경을 예비하셔서
우리 안에 갈급함을 불러 일으키심으로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
성령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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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조건은
’인간‘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무능력>과...
오직 주의 말씀만을
갈급함으로 듣고자 하는 <절박함>...
즉, 내게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단 한가지도 찾아볼 수 없기에
오로지 주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절박한 시점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들음‘이지
결코 ’행함‘이 아닙니다.
’행함‘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일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주를 위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행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 하고...
믿음의 근거를 찾고자 애씁니다.
그래서 큐티를 할 때에도
그날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주의깊게 듣기보다는
너무 성급하게 적용거리들을 찾아
곧 바로 삶에 뛰어들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잠시 멈춰서서 주님의 음성을
여유있게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그 들은 바 말씀을 통해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새로운 믿음의 동기력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정확한 뜻을
분별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며
인생을 멀리 돌아가지 않게 되는 첩경입니다.
오늘도 내게 허락하신 하루를
주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깨어서 주님 음성에 민감히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적용>
오늘 영어성경읽기를 하면서 현재 내 삶에 이슈로 떠오르는 삶의 현실들 앞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며 듣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음성을 세밀하게 듣기 원합니다. 어제의 만나로 오늘을 살 수 없고, 오늘의 만나로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오늘 먹을 양식을 맞춤형으로 차려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제 육신이 게으르고 타성에 젖어, 어제 먹은 밥으로 대충 때우고자 하는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주님께서 제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실시간으로 듣기를 원합니다. 들려주소서. 채워주소서! 주의 생명의 말씀을 앉은뱅이와 같은 태도로 간절하게 듣고자 하는 갈급함으로...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다고 한 다윗의 고백과 같이... 제 안에 주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블로그
https://blog.naver.com/gomting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