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대가 당연히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타인이 그대에게 말하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나라는 존재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대에게 요구하는 지점을 〈순종함〉으로 나라는 존재를 채우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한 형태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이 땅은 나라는 존재에게 자기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발전시키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논리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묻어 있는 말끝은 결국 네가 완전하게 되어, “신이 되어라_”라는 요구입니다. 태초에 선악과의 유혹과 비슷하죠.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음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개발하기보다는,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할 때 나라는 존재를 그분이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나의 기준”인지, “무엇이 나의 주인”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혼자로서 광야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로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그분은 여전한 음성으로 그대에게,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음성으로 시작하는 나의 첫걸음은 질적인 차이를 가지며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어떤 이는 탕자가 되지만, 아버지를 떠나 어떤 이는 아브라함이 되는 것 같이요. 그런 아브라함의 걸음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은혜와 음성이 75세의 노인에게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많은 무리, 군중,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생의 마지막에는 철저하게 혼자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혼자셨지만, 결코 작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시지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요한복음 16장 32절
예수님은 신이기에 외로움을 몰랐을까요?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기에, 그분은 외로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기에 더욱 외로움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분은 당시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셨고, 얼큰한 쓸쓸함에 취하여 비틀거리셨던 분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와 소인들에게 더욱 다가가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 재미있는 것은, 그분은 혼자라는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지점에서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_”
요한복음 16장 32절의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표현하면, “너희는(제자들) 다 뿔뿔이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입니다. 시스템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으면, 이 말씀은 특별한 감격과 감동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말은 전에 없던 새로운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예언자와 같은 문법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해석하고, 자신의 홀로됨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싸구려 위로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저렴한 자기 연민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보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불량한 시대를 역전했던 전사의 발자국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황량한 시대에 봄의 역사를 선구했던 그 확신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다_”
그분은 어설픈 긍정의 힘과 자기 암시로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십자가 지는 공포를 거룩한 사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혼자입니까? 그래서 외로움에 함몰되었습니까? 그대는 혼자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까? 그대와 내가, 우주적 공통점인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가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십자가는 홀로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이론상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전혀 맞는 말이 아닙니다. 혼자이기에 그리스도인은 가장 위대한 십자가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대가 시대의 예언자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하나님을 소유한 혼자라면, 말입니다.
그대는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로서 나와 혼자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면,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혼자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로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존재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는 홍해를 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는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약속의 땅을 받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여, 혼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것은 가장 믿음 없는 말입니다. 그대의 홀로의 감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를 바랍니다.
†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시편 16장 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요한복음 14장 18절
† 기도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와 주셔서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저에게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혼자인 것 같지만 당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과 오늘도 동행함으로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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