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팅이의 집_윤홍진

주님 등에 엎히는 믿음

엘리야를 믿음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열심 (왕상17장)


엘리야를 믿음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열심 (왕상17장)



오늘부터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인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위대하고 통쾌한

승리의 순간들만을 인상깊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하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친 사건이 떠오르고,

'요셉'하면 감옥이라는 밑바닥에서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앉은 것이 떠오르고,

'다윗'하면 물매돌 하나로

골리앗을 때려눕힌 사건이 떠오르고,

'다니엘'하면 사자굴에서

건짐받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그들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믿음없었던 그들을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로 만드셔서

결국 그러한 믿음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으셨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그들의 삶을 추적해 보면

결코 그들이 가졌던 믿음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엘리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엘리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갈멜산 전투에서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그의 생애 가운데

다섯손가락에 꼽을만한 사건이며

그의 생애의 대부분은

고뇌와 몸부림, 낙심과 좌절로 얼룩진

하나님의 열심의 산물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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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참으로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이스라엘이 두쪽으로 나뉘어진 이후

역사상 최악의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과

천하의 악녀 '이세벨'의 통치시대입니다.

게다가 극심한 가뭄으로

먹고 살기 힘든 때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요단강 주변의 그릿시냇가로 인도하사

아합왕을 피하여 숨어지내게 하십니다.

거기서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음식과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떠마시며

근근이 연명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시냇물마저도 말라서

먹을 물이 없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서

물과 떡을 구걸하여 먹으라 하십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라면

하늘의 만나를 내리게 하셔서

좀 뽀대나게 먹이시면 좋으련만...

자신과 그 아들 먹을 것도 없어서

내일 죽게 생긴,

찍어지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해서는 안될 일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과부의 집에 있는

기름병과 곡식가루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였을 때

그대로 기적이 이루어졌고,

엘리야와 과부의 식구들이

여러날을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공급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엘리야의 이야기가 끝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좋을텐데...

하나님은 거기서 끝내지 않으시고

다음 단계로 엘리야를 이끄십니다.

과부의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된 것입니다.


과부와 엘리야 모두 절망하여

바닥을 치며 통곡합니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왜 우리집에 와서

내 아들을 죽게 만들었냐며 따지고,

엘리야는 하나님께로 가서

왜 자신이 머무는 과부의 집에

이런 재앙을 내리셨냐고

부르짖으며 괴로와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실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의지하여

과부의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고

그제서야 과부는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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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름병과 떡이 끊이지 않았다.'

'죽은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믿음의 기적과 결과에만 초점을 두고

그 과정 중에 과부와 엘리야가 통과한

믿음의 번민과 몸부림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믿음생활을 해오면서

기적같은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한 순간들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면...

대부분은 고뇌와 역경 속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몸부림치는

불안정한 순간들의 연속이었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토록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칠고 험난한 삶의 순간들은

결코 간과하고 넘어갈 시간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순간마다 개입하셔서

죄악과 고집으로 쩔어있던 우리를

그분의 영광스러운 믿음의 자리로

신실하게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하나 맛보며 음미해야 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시기를 통과할 때

너무나 자주 그 고난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속히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고난 속에 담겨 있는

고농축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은

그 자체가 기적이며,

이것을 기적으로 믿고 사는 사람은

매일의 일상이 기적이 되는

놀라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허락하신

'하루'라는 시간 속에 감취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구석구석 발견하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주워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를 연습하겠습니다.


<적용>

주님과 대화하며 순간순간 들려주시는 음성들에 반응하며 부지런히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지체치 말아야겠습니다. (하늘우체통 복음카드뉴스 기획, 골방에서의 기도루틴 실천, 이웃들을 향한 섬김)


<기도>

사랑하는 주님, 부족하고 고집스러운 저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주님께서 얼마나 많이 제 삶에 개입해 오셨는지... 엘리야의 삶을 통해 배웁니다.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인 저를 오래 참고 인내해주신 주님... 저를 지금 이 자리에까지 끌고 오신 주님의 열심에 그저 감사하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저를 향한 주님의 오래참으심과 주님의 '믿어주심'이 없었다면... 저는 벌써부터 진멸되었을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한 '제 믿음'이 아니라... 가망없는 죄인인 저를 향한 '주님의 믿어주심'이 저를 살렸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믿음의 삶은, 결코 '내 신념'이 아닌 '주님의 믿음'으로 사는 삶임을 고백합니다. 저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열심이 아니면... 제 삶은 결코 설명될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3:18)


내 손을 붙잡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인도해 오신, 나의 주예수님의 열심이 아니었으면... 저는 결코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주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생애가 몹시 기대가 되는 건... 천국에 입성하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제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쉬지않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날 향한 주님의 열심 안에서 담대함과 용기를 얻고 용감히 하루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블로그

https://blog.naver.com/gomting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