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그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성령님은 인격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인격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들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느끼실 수 있다. 그분은 사랑하실 수 있다.
그분은 미워하실 수 있다. 그분은 슬퍼하실 수 있다.
인격체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분에게서 발견된다.
그분이 인격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듯이 그분과도 친해질 수 있다.
성령님이 인격체이심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그분과의 교제가 시작될 수 있다.
그분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모른다면 어떻게
내가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내 논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사람들은 그분의 인격성을 인정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만다.
즉, 인격체이신 그분과 친해지는 다음 단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와 그분 사이에는 친근함이 새록새록 생겨야 한다. 두 인격체가 서로를 자꾸 겪어보아야 한다. 성령님이라는 인격적 존재와 ‘나’라는 인격적 존재가 만나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하신 성령님이 이제 우리 중에,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다. 몸을 가지신 예수님은 전능자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그분은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는 거기에 계실 것이다.
그분의 재림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성령님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다.
성령님은 과거의 그리스도, 현재의 그리스도,
그리고 미래의 그리스도와 모든 면에서 동일한 분이시다.
성령님에게는 인격성, 개체성, 지성(知性), 사랑, 그리고 기억이 있다. 성령님은 당신과 의사소통하실 수 있고, 당신을 사랑하실 수 있다. 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하거나 그분을 못 본 체하면, 그분은 슬퍼하며 차가워지신다.
우리가 성령님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이 슬퍼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그분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분이시므로 또한 슬퍼하실 수도 있다. 내가 볼 때, 오늘날의 복음주의 교회는 그분을 슬프게 한다. 우리가 그분을 인격적 존재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은 슬퍼하신다.
물론 우리는 교리적으로는 그분을 안다.
성경을 인용하고 그 성경을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성령님에 대해 아는 것과 그분을 개인적 관계에서 친밀히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 여기에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 믿음의 순례길을 갈 때 그분을 최고의 친구로
모실 정도로 그분을 알아야 한다.
† 말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26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장 30절
† 기도
하나님, 성령님께 귀 기울이지 않고 못 본 체하는 순간들이 저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인격체이신 성령님과 친밀해지게 하시고, 제 삶의 중심이 되어주소서. 그분을 최고의 친구로 모시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우리는 성령님의 인격성을 인정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그분과 친해지는 다음 단계로 들어가지 않는 거지요.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우리와 그분이 친근함이 생기기를 간구합시다.
2023년 4월 28일 앙콜테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