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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나를 포기하신 건 아닐까?’

나의 비틀걸음보다 크신 하나님의 열심

 2023-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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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당시 고대 근동 시대의 다른 족보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요, 족보에 여인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다말(3절), 라합(5절), 룻(5절),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6절), 마리아(16절)까지 무려 5명이나 됩니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공자(孔子, BC 551-479) 가문의 족보에 여인의 이름이 올라가 화제가 된 것이 불과 20년도 되기 전의 일입니다. 그러니 고대 사회에서 여인의 이름이, 그것도 5명씩이나 족보에 오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다섯 여인의 삶의 걸음은 더 놀랍습니다. 가나안 여인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자신과 동침하게 하고 둘 사이에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 창 38:15,16


여리고 성읍에 살던 가나안 여인 라합은 기생이었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수 2:1


룻은 모압 여인으로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낯선 땅에 와서 이민 생활을 한 난민이었죠.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룻 1:22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는 다윗 왕의 범죄로 한순간에 남편을 잃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얻은 아이마저 잃는 큰 슬픔을 겪죠.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 삼하 11:26,27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 삼하 12:18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는 달랐을까요? 마리아 역시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를 잉태하는 매우 곤란하고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어떠세요?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이름들이죠. 이렇게 수치와 죄악과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예수님의 족보를 볼 때 생각난 단어가 ‘비틀걸음’이었습니다. ‘비틀걸음’이란 올바로 걷지 못하고 쓰러질 듯 걷는 걸음을 뜻합니다.


비틀-걸음 명 비틀거리며 걷는 걸음.


그러고 보니 인류의 구원자 메시아의 족보에는 어울리지 않는, 지우고 싶은 이름들이 더 보입니다. 먼저 3절에 나오는 ‘세라’입니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예수님은 베레스의 후손이셨기 때문에 세라의 이름을 빼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아니, 빼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은 베레스와 세라를 모두 넣었습니다. 마치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건을 굳이 떠올리게 하려는 듯합니다.


빼고 싶은 또 다른 이름은 6절에 나오는 우리야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하면 될 것을 굳이 우리야의 아내로 써서 다윗의 범죄를 상기시키려는 듯 보입니다.


6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성경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이름들을 넣은 것일까요? 의롭게, 떳떳하게 산 사람들만 넣어도 부족할 판에 왜 이렇게 비틀거리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까지도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비틀걸음’까지도 ‘빛의 걸음’으로, ‘빛으로 가는 길’로 삼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야곱의 속임수, 유다의 일탈, 다윗의 범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그런 수치와 아픔과 죄악까지도 ‘빛의 걸음’으로 만드셔서 마침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야 마는 하나님의 열심, 이 놀라운 사랑!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우리도 모두 저마다의 계보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때론 지우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죄악과 수치의 순간들이 분명히 있죠. 비틀걸음의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의 수치와 죄악과 비틀걸음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틀걸음’을 ‘빛의 걸음’으로, 빛으로 나아가는 길로 삼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생의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시고야 마는 하나님!


맛있는 바나나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보통 바나나를 살 때는 노랗고 매끈하고 단단하고 신선한 것을 고르지만 빵을 만들 때만큼은 다릅니다. 단단하고 매끈한 상태는 바나나빵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고, 조금만 으깨도 물컹물컹한 덩어리가 될 만큼 농익었을 때 가장 맛있는 바나나빵을 만들 수 있다고 하네요.


이리 맞고 저리 맞아서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너무 절망하지 마세요. 제빵사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가장 맛있는 빵으로 만드시는 과정일 수 있으니까요. 거의 상한 것처럼 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바나나가 오히려 달콤한 바나나빵의 재료가 되듯이,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는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으로 만드는 귀한 재료가 될 것입니다.


혹시 지금의 삶이 너무도 비틀거려서 ‘주님이 나를 포기하신 건 아닐까?’ 의심하셨다면 다시 한번 임마누엘의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모든 실패와 실수 속에서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주님께서 비틀거리는 우리의 인생 또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반드시 인도해주십니다. 그 은혜를 붙들며 다시금 구원의 감격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보통목사의 10분 성경, 현병찬



† 말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시편50장 15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2절


† 기도

작고 한없이 나약하고 비틀거리는 인생이지만 그런 저를 사랑하셔서 인도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한 없는 은혜를 붙들고 살아갈 때에 승리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우리의 실수와 죄악에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금 상황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를 끝까지 이끄시는 주님을 붙들고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 함께 보면 더 은혜로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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