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말썽을 많이 부렸고, 선교사로 헌신하고 나서도 늘 사고치고 혼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잘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엄한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그 칭찬에 안주하거나 교만해질까봐 칭찬을 아끼신 것 같다.
한번은 어느 집회에 갑자기 못 오게 된 강사를 대신해서 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생 처음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밤새 준비를 해서 무사히 그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처음 받은 사례비를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다.
늘 사고뭉치였던 나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고 뿌듯해하시리라 기대하며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이 재정을 아버지께 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이 말과 함께 아버지 앞에 봉투를 쓱 내밀었다. 엄청 감격하실 줄 알았는데 봉투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대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시고는 이렇게 질문하셨다.
“선교야, 너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로 이야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
도대체 어떤 칭찬을 해주시려고 이렇게 심오하게 접근하실까 기대하며 “네!”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대뜸 “선교야, 그래서 너는 가장 불쌍한 인간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말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삶이 따라야 한다는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받은 열매를 아버지께 드리겠다고 찾아온 아들에게 하실 소리가 맞나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시고 봉투를 안 받으셨을 것 같지만 받으셨고, 그걸로 나를 뺀 팀원들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서 맛있게 드셨다.
그런데 아버지께 진심어린 칭찬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사건이 있다. 다만 대놓고 말로 하신 것이 아니라 표정으로 해주신 것이라서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이다. 혹시 아니면 실망할까봐 아버지께 묻지 않고 혼자 추측을 이어가고 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나서부터 궂은일을 많이 해서인지 나는 남들보다 비위가 좋은 것 같다.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한 번 씻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까 비위가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부터 화장실 청소를 많이 하다 보니까 발달한 영역이다.
어느 단체에서 합숙 훈련을 받을 때 청소 시간이 있었다. 다 같이 청소를 하는데 화장실 앞에 몇 사람이 멀뚱히 서 있기에 물었더니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고무장갑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청소하고 나서 씻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휴지를 쓰고 잘 접어서 버리면 될 텐데 뭐가 자랑이라고 다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휴지들을 맨손으로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몇 칸의 화장실을 정리하고 넘어가려는데 뜻밖에 아버지를 만났다. 그날 아버지께서 내가 훈련받는 단체에 강의를 하러 오셨다가 화장실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두 손에 오물이 묻은 채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나와 마주친 아버지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가장 흐뭇하고 대견해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대단한 일이나 멋있는 일이 아니다. 이걸 어디 가서 자랑할 일도 아니다.
“아니, 글쎄. 우리 막내아들이 맨손으로 화장실 휴지를 치우고 있더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표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마음이실지 얼핏 짐작은 갔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정하고 나서서 박수를 받는 자리보다 묵묵히 맡겨진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모습이 더 대견해 보이셨을 것이다. 그 표정과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그날 기도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때 주님이 내면의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교야, 잘 들어봐. 내가 만약에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면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불러다 쓰면 되겠지? 그러다 그 자리가 비면 난 또 일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쓰면 돼. 그렇지? 선교야, 또 들어봐. 내가 만약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해. 그러면 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쓰면 되겠지? 그러다 또 그 자리가 비면 다른 노래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쓰면 돼.
그런데 선교야, 너는 너라는 존재 때문에 너를 부른 거라서 너 아니고서는 아무리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와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가 없어. 선교야, 나는 네가 필요해. 네가 이룬 사역 말고 너의 재능 말고 네가 이룬 업적 말고. 선교야, 나는 네가 필요해.”
너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내게 주고 있는 거야.
사탄은 우리의 연약함을 들먹이며 “너 같은 것이 무슨 하나님나라에 보탬이 되겠어?”라고 참소하며 조롱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탁월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속임수에 속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한 것은 하나님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능한 것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능과 가능성에 따라 우리를 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우리 자체’로 충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이다.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어떠함에도 사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가치이다. 우리가 가진 세속적 가치를 뿌리 뽑고 교회에도 제대로 뿌리내려야 할 가치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이 주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말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1, 2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한일서 4장 10절
† 기도
주님,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나약함에 절망하지 않고 사랑가운데 임하시는 주님께 나아가 평안함을 얻을 수 있게 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그분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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