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하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상 생애, 날마다의 삶의 현장 속에서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인 순례자 크리스천이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은 시온의 성이지만, 이 책 전체에는 그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싸움, 하루하루의 시험, 하루하루의 기쁨과 같은 것들이 다루어집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을 돕는 여러 사람들-전도자들, 해석자들, 목자들도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시험을 극복하며, 고난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빚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명칭들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지만, 순례자 크리스천이 걸었던 일상은 오늘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통과했던 겸손의 골짜기를 우리도 통과하고, 그가 통과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도 통과하고, 그가 의심의 성에 갇혔던 것처럼 우리도 의심의 성에 갇히고, 그가 허영의 시장에서 받았던 유혹을 우리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천로역정》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영성 중 하나가 ‘일상의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의 영성을 아름답게 빚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로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1614-1691)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파리 근교의 카르멘 수도원에서 수사로 일했던 그의 본명은 니콜라스 헐먼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냥 ‘로렌스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회계와 요리를 맡아 일했습니다. 그가 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은 1600년대에 쓰였지만 지금까지도 좋은 책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종의 일기인데, 부록으로 수도원 원장이 로렌스 형제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증언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증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부록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로렌스 형제가 부엌에서 그릇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경건한 사제가 성찬을 집례하듯 엄숙하다. 그릇을 다 닦고, 임무를 완수한 뒤 부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부엌이 성소인 양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무른다. 부엌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한 빛이 있음을 본다.
우리는 그와 대화하면서 때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의 손을 만지면 예수님의 손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대단한 설교를 했던 사람도 아니고, 성찬을 집례한 사제도 아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 임재를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일상의 영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24절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 자녀와 부모의 관계, 또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가정, 종과 상전의 관계는 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상의 삶에 대한 권면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 2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이라고 하면 전도하는 것,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주어지는 배경을 볼 때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우리가 그것으로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에 임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사람은 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 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월급이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주님이 내 성실함에 대해 상급을 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정비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우리에게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의 삶’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말씀보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 때, 일상에서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상의 삶을 슬기롭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경건 실천의 우선순위입니다.
일상의 승리를 위해서,
제대로 예배하고 제대로 QT하는 것은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 말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로마서 12장 1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빌립보서 1장 27절
†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맡기며 나아갑니다. 하루하루 시험을 만나고 극복하며 고난을 넘어가고 기뻐할 때 주님 안에서 빚어지고 만들어지게 하소서. 일상의 작은 삶들이 모여 오늘이 되고, 그 오늘이 모여 삶이 됩니다. 그 일상의 승리 가운데에 주님이 중심되어 주소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슬기롭게 이 순례의 길을 나아가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영성은 하늘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정비되어야 합니다. 경건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삶에 정비되어야 할 경건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위해 애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