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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장거리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야... 힘들면 쉬었다 가면 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의 뜻대로 자라고 커나가고 부모의 속도대로 가주기를 원합니다. 그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장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묻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아이 이전에 주님의 아이이기 때문이죠.
"힘들면 쉬어다 가도 된단다.. 아이야.." 오늘은 그렇게 이야기 해주면 어떨까요?

나는 엄마로서도 성장해야 했다.
성장해야 한다는 건 많이 미숙했다는 뜻이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아들을 돌봐야 했을 때, 내가 더 큰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러면서 알았다.
우리 대부분은 겉으로만 어른일 뿐 극한의 상황을 만나면 어딘가로 도망치는 유아적 약함을 지녔다는 것을. 나의 부족함에 눈을 떠야 매 순간 하나님께로 가서 지혜를 배우고 진정한 사랑의 양육을 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를 위해 뭐든 하겠다고 호언장담할 때는 아무 말씀 안 하신 주님이, 오히려 베드로가 자신은 제자의 자격조차 없다며 절망할 때 나타나 “내 양을 돌보라”라는 부탁을 세 번이나 하셨다.
앞으로 베드로가 만나게 될 세상의 많은 양을 자기 뜻대로 돌보지 말고,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께 물으며 주님의 뜻대로 돌보라는 말씀이셨다.

아들이 아픈 이후 나는 큰아들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과 유리방황하는 세상 속의 양들을 청지기로서 돌아보라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은 불안과 학교 공포증을 서서히 극복해 가는 듯 보이다 전학 간 학교에서 병증이 악화되고 말았다.
6학년 담임교사는 이런 병이 온 건 아이의 정신상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태도로 아이를 대했다. 아들의 귀와 눈과 피부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이때 나는 아들을 위한 최선은 달래서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는 일이라 오판했다. 아들 입장에서 엄마는 아픈 자신을 지옥에 보내는 악마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때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안에 휩싸인 영혼에게 시급한 건 ‘설득’이 아니라 ‘안심’이란 걸.
“아파도 괜찮아, 인생은 장거리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란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 돼.
쉬는 기간이 길어진다고 하늘 무너지지 않아.”
아쉽게도 나는 이런 말들을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폐해진 상태로 털썩 엎드려 하나님을 불렀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 우리 집안에 뭐가 문제일까요? 혹시 제게 회개해야 할 게 있나요? 있다면 가르쳐주세요. 그럼 고칠게요’라고 의례적인 기도의 말을 뗐다.
실은 답답한 내 마음을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 말을 덥석 받으시더니 “네가 회개한다니 내 마음이 참 기쁘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아들 민성을 사랑으로 달래주라는 마음도 강력하게 주셨다.
하나님의 그 응답에 어리둥절했다. 하나님은 마치 내 안에 회개하고 처리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드디어 그걸 시작하려 한다니 참 기특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내 등을 밀며 아들에게 가라 하시는 것 같았다.
아들의 방문 앞에 가서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아들 옆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민성,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어.”
“엄마가 뭘 잘못했는데요? 뭘 잘못했는지나 알아요?”
“네 잘못이 아닌데. 엄마가 되어서 네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것부터가 잘못인 거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어.”

실제로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그때까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그날 나는 성령에 떠밀려 끝까지 사과했고,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먼 훗날, 아들은 “그때 내게 제일 갈급했던 건 누가 나를 끝까지 이해해줬으면 하는 거였어요.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나를 빨리 뜯어고치려는 엄마의 태도가 싫었어요. 엄마 말대로, 우리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뿐이라면 다른 사람의 주인도 하나님뿐인 건데, 누군가 다른 사람을 뜯어고치려 한다는 건 그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겠다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일하시도록 둬야 하는데 사람이 일하려고 하니까.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 ‘미안하다’라는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어요.
‘나도 미안한데 너도 이런 잘못이 있잖아’가 아니라, 끝까지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라고 해주는 거. 그러면 그동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마음, 억울했던 마음들이 풀리면서 ‘나도 실은 잘못이 있는데…’라고 하게 되잖아요. ‘미안해’라고 하는 말, 그게 아픈 아이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약이거든요.”

나는 내 속에 깊이 자리했던 악의 실체를 보면서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하나님께는 “회개합니다. 돌이킵니다”라는 고백을, 가족에게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면 어때? 너는 특별하단다”라고 말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한근영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