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 골짜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방법들이 세상이고 사람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시간이다. 세상 중심으로 반응하고 슬픔에 빠져 절망하거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그 골짜기는 더 깊어진다. 도와줄 사람을 찾지 마라. 그 사람도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절망을 줄 수도 있다.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무조건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때 온전한 믿음이 작은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다면 주님을 붙잡는다. 나의 힘으로는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 자체가 우리에게는 놀라운 믿음의 연습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이나 어떤 업적이나 어떤 간증이 아니라 믿음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성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결과’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과와 성취를 중요하게 보지 않으신다. 보지 않고 믿는 것, 그리고 믿음으로 걸어간 과정을 중요하게 보신다.
우리의 믿음은 평범할 때는 드러나지 않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이다. 나와 함께하고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인생의 과정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일로 오늘도 헷갈리고 있는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체험했다. 그것이 중요하다. 당신에게는 성경 누구와 함께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함께한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하나님과 함께함을 추상적인 신앙고백으로 대신할 수 없다. 성경의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로 나의 간증을 대신할 수 없다.
성경에 수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나의 간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평탄할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도 고통의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나의 간증이 없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믿음을 물려줘야 하는 이유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대신 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던 시간에 기도원으로 갔다. 사실 하나님과 싸우러 갔다. 집에서 싸워도 되는데 기도원에 가면 하나님과 좀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아서 기도원에 갔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기도를 시작했는데 하나도 은혜가 안 됐다. 그리고 하나님이 잘 들으시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불평이 나오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목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았지만 어렵고 힘든 골짜기의 시간에 찬양도 잘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좋지도 않고, 사람의 믿음이 참 별것 아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나를 딱 붙잡고 계셨고 정신을 들게 하셨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고 너를 선택했고 너와 함께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기도굴에서의 외침이 나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탈출기였다.
하나님을 존중함으로
겸손하게 나아가기
평탄할 때 기도굴을 정기적으로 찾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 사망의 권세가 나를 짓누를 때, 정신을 잃고 돌아버리고 싶을 때 피난처와 같은 곳이 기도굴이다. 나에게는 단어 그대로 기도굴이 피난처였다. 두 곳의 기도원에서 혼자 기도할 수 있는 기도굴은 나를 살리는 곳이었다. 어려서 한창 은혜받을 때 겨울에도 야외에서 눈을 치우고 무릎 꿇고 기도했던 시절의 뜨거움이 다시 살아나고 은혜가 살아날수록 나의 문제는 작아져 갔다.
주님께 집중하면 아무리 세상이 공격을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기도굴에서 나오면 또 쉽지 않았다. 분노가 찾아오고 짜증이 났고 사람 사는 이 세상이 참 더러웠다.
한 번의 은혜로, 한 번의 뜨거운 기도로 살아나지 않는다. 은혜의 깊은 샘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도굴의 시간은 그 회복을 일으키는 마중물과 같은 곳이 되었다.
마음속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하셔야 한다. 나는 문제가 깊을수록 사람에게 상담이나 만남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질환일 때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하나님을 찾고 말을 줄이고 사람과 만남을 줄였다. 그리고 기도가 되든 안 되든 기도굴에서 지냈다. 그것이 나의 탈출방법이었다.
†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4절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 시편 116편 3,4절
† 기도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온전히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나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목자되신 주님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온전히 주님을 사모하며 감사함으로 씨름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성경 누구와 함께한 하나님, 주변의 누구와 함께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함께한 하나님’이 존재합니까? 고통의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나의 간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살아나고 샘솟아 당신에게 ‘나의 간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