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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자

그분을 바라보자! 그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자!

 2019-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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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자기가 맡은 역할을 피와 땀으로 수행하고 나면 막이 내리고, 조명은 꺼지며, 연기자는 어김없이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 주님은 한 시대라는 무대에 한 종을 출연시켜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드라마를 역사에 펼쳐 보여주셨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완수한 다윗은 이제 자기의 위치로 겸손히 돌아간다. 다윗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그 임무를 완성한 수많은 영웅들이 서 있는 자리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들은 모두 경주를 끝까지 달려낸 완주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바통을 전해받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끝까지 달려내기 위해서 혹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확인하라는 권면의 음성이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몸에 잔뜩 진 채 최고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교만하고 무지한 태도이다. 경주하는 자는 0.1초라도 그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 냉혹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경주에 맞춰 자신의 삶을 최적화하지 않는다면 금메달을 꿈꿀 자격이 없다. 우리는 과연 최상의 기록을 바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완주하고자 하는 이 경주를 이미 돌파한 신앙의 선진들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 표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죄의 최종적인 결과인 멸망을 상기시키기보다 죄의 접근성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해로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습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바로 얽매이기 쉬운 죄이다. 그 죄는 우리를 반드시 얽어매어 멸망과 파괴와 사망으로 끌고 간다. 처음부터 극히 혐오스럽게 다가오는 죄로 인해 실족하는 자는 적다. 대개 일상에서 패배한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자신과 동행하며 동거하는 심히 작은 죄가 서서히 장성하여 결국 그 죄에 완전히 삼킴을 당하는 경우이다. 혹시 지금 우리는 일상의 작은 죄들을 너무나 너그럽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를 향해 호소하고 있는 또 한 가지 당부가 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로써 감당하라는 부탁이다. 경주는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완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한 경주”(the race marked out for us, NIV/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ESV)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 2:5)이라고 말한다. 요구된 희생을 회피하고, 예정된 고난에서 도망치는 것은 반칙이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을 추구하는 것은 편법이다!

주님의 연단과 채찍과 훈계 없이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망각에서 깨어나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는 풀무불 속에서도 손상되지도, 파괴되지도, 변질되지도 않는 중심을 소중히 간직하며 정해진 기한이 다 차기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는 모습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다윗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진정 끝까지 인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당한 경주를 달려내고자 할 때, 주의 용사로서 용맹스럽게 분투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때도 있겠지만, 도망자로 쫓길 때도 있을 것이고, 실패자로 넘어지거나, 죄인으로 바닥에 고꾸라져 엎드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완주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믿음의 주”는 원어로 ‘챔피언’이라는 뜻이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신 참된 용사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죄와 사망과의 십자가 전투에서 대신 승리를 거두어 주신 장군이시다. (고대시대에 한 지역을 정복하고 돌아온 충성된 장군들에게 허락된 상급은 왕의 오른쪽에 앉는 것이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정복하고 귀환한 장군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또한 ‘당한 경주’는 어떻게 달려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최우수 선두주자이시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그분을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원어로 이와 동일한 단어가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도 발견된다. 주님은 달려갈 경주를 다 마치시고 최후 승리를 선포하신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타이틀은 “다 이루었다!”라고 세상에 공포하실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이제 막은 내려가고, 조명은 소등되며, 다윗은 겸허히 자신의 자리로 사라졌다. 다시 한번 더 막이 열리며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완주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그분 없이 우리가 어찌 이 경주를 달려내겠는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 경주를 달려낼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분을 바라보자! 그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자! 이것은 그분을 흠모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완주자의 최종 목적지이다. 주님과 마침내 함께하는 것이다! 주님을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이다. 당신의 믿음의 경주는 오늘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이제 우리 차례다! 이제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사랑을 삶으로 고백할 때이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허무한 세월 속에서, 인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들 속에서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심으로 흠모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 말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장 1, 2절

† 기도
완주자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는 열심히 일상에서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주 속에서 유혹받는 죄와 열심히 싸우고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믿음 안에서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오직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게 하소서. 이 경주에서 낙오되지 않고 완주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우리가 완주하고자 하는 경주에 걸림돌이 되는 ‘얽매이기 쉬운 죄’. 나에게 있어 매일매일의 삶에서 동행하며 동거하는 심히 작은 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이 장성하여 우리를 삼킬 수도 있습니다. 나의 생활을 돌아보며 작은 죄라도 너그럽게 대하지 맙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