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 : 천사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탄생을 공표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서 천사를 사용하셨다. 천사 가브리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가랴에게 나타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주님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 천사는 또한 나사렛의 마리아에게도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눅 1:6-55).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그와 정혼한 마리아가 메시아의 모친이 될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또한 천사들은 베들레헴 언덕에 있던 목자들에게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Birth : 탄생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사건은 이적 중의 이적이었다. 처녀가 아기를 낳은 것도 이적이었지만, 그보다 더한 이적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단 7:9)이 시간 안에서 태어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예수님 존재의 새로운 양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최초의 성탄절에 처소를 옮기셨을 때, 천사들은 정말 기이하게 여겼을 것이다. 만세 전부터 하늘의 영광과 천군 천사의 예배를 받으시던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을 감추시고 소박한 시골 부부의 품에서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셨으니 말이다(빌 2:6,7).
더욱이 세상의 임금께서 어디에서 출생하셨는가? 마구간은 위생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인간의 아기가 태어나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성탄절 카드들이 풍기는 인상처럼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나거나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요람은 말들의 여물통이었다. 영광의 주님은 너무도 낮은 모습으로 지상의 삶을 시작하셨다.
Carpenter : 목수
마태와 마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소년기와 나사렛에서의 성장기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지만, 의사였던 누가는 이 기간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했다. 그는 소년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을 받았다고 확실하게 말했다(눅 2:40,52).
예수님은 정신적, 신체적, 영적, 사회적인 면에서 건강하게 성장하셨다. 예수님은 육신의 모친 마리아와 자신을 길러준 부친 요셉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요셉 목공소’에서 목수 일을 배우셨다.
Dove : 비둘기
예수께서 예루살렘 반대편 요단강에서 자신의 사촌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다. 이 장면에서 성삼위(聖三位)가 모두 나타난다. 성자(聖子)께서는 물에 계셨고, 성령(聖靈)께서는 비둘기 형상으로 임하셨고, 성부(聖父)께서는 하늘에서 음성을 내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죄 많은 인간과 동일시하셨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해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징표로서 세례를 베풀었다. 그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선언했다.
Enemy : 원수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께 이끌려 사해 북단의 광야로 들어가셨고, 거기서 하나님 백성의 원수인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우주적인 갈등인 선과 악의 양대 세력이 유대 광야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실일까? 물론 그렇다. 예수님은 죄를 범할 수도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다”(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와 “그럴 수는 없다”(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예수께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삭막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상태였다. 사실 사탄의 요구 사항은 그 자체로 정당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합당하지 못한 방법(동기)으로 이적을 일으키라고 제안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탄은 예수께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한 능력을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를 거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 나라들과 사람들의 칭송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피하지도 않으셨다. 주님은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팔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세 차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면했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예수님의 원수 사탄은 곧 우리의 원수이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세 차례 인용하셨다. 구약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 암송하고 계셨던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는 신명기 말씀을 몇 구절이나 인용할 수 있는가? 구약 전체에서는 어떤가? 시험과 유혹의 순간에 가장 유용한 것은 공책이나 책상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다.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깊이 새겨 주께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시 119:9-11).
Followers :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 중 일부는 베레아에서 따르기 시작했고, 다른 제자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부르셨다. 그들 가운데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요 1:35-42). 세례 요한의 사역이 오래 지속될수록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일꾼이 아니었다. 메시아보다 먼저 와서 메시아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었기 때문이다.
열두 제자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자. 다 외우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다음 도식처럼 ‘맨 가(街) 52번지’(52 MAN ST.)만 외우면 열두 제자의 이름을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숫자 ‘5’에는 알파벳 ‘J’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제자 5명, ‘2’에는 알파벳 ‘P’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제자 2명, ‘M, A, N, S, T’는 각각 그 철자로 시작하는 제자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열두 사람들을 택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복음서 기자 마가가 단서를 제공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은 3년의 사역 기간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제자(“배우는 자”라는 뜻임)로 키우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도제’(徒弟)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사역을 증대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세상에 보내어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자기를 구주로 영접한 ‘제자들’(크리스천들)을 세상으로 보내신다.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처음 영접한 순간이야말로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가장 잘 갖춘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상태에 만족하여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의 일꾼으로서 세상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
Guest : 손님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 초기에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으셨다. 주인이 준비한 포도주가 동났을 때, 예수께서는 당황한 주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난처한 상황에서 구해주셨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이 창조주로서 물질의 원소(元素)까지도 지배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보이셨다. 거기에는 아들의 신성(神性)을 믿었던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있었다. 이 공적인 이적은 부차적인(그러나 매우 중요한) 유익도 끼쳤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요 2:1-11).
예수님은 이 결혼식에 참석하여 기적을 베푸시고 또 나중에 결혼에 대해 직접 말씀하심으로써 결혼 관계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결혼은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제정된 것으로서(창 2장),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아이디어이다.
Housecleaning : 성전 정화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을 보자. 예루살렘 북동쪽에 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 이제 ‘예수님 당시의 성전(헤롯 성전)’을 보자. 이 성전이, 스룹바벨이 재건한 것을 헤롯대왕이 장식하고 미화한 성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전 지역을 확대한 이 그림을 통해 ‘이방인의 뜰’이 헤롯 성전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방인들이 성전에 적법하게 접근할 수 있는 범위가 여기까지였다. 유대인 여자들은 이방인들보다 좀 더 가까이 ‘여인들의 뜰’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유대인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가까이 ‘이스라엘의 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제단을 비롯한 그 이외의 구역은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몇 유대인들이 이 넓은 ‘이방인의 뜰’에 가판대를 차려놓고,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제물로 가져온 동물들을 검수하여 언제나 ‘흠’을 찾아냈다. 그러면 순례자들은 제물로 가져온 동물들을 빼앗기고, 다른 가판대로 안내되어 유대인들의 검수와 승인을 받은 동물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유대인 장사치들은 ‘검수와 승인을 받은’ 동물들을 어디에서 구했던 것일까? 그것들은 다른 게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순례자들이 ‘검수와 승인을 받은’ 동물을 구입하려면 먼저 세상에서 사용하던 ‘부정한 돈’을 성전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바꾸어야 했다. 물론 환율은 언제나 성전 화폐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었다. 순례자들은 ‘승인된’ 동물을 구입하기 위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치러야만 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착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이 의분으로 가득하여 돈 바꾸는 자들과 동물을 판매하는 자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신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라고 고함을 지르셨다(요 2:16).
이 사건으로 예수님은 백성들의 호의를 얻으셨고, 제자들은 예수께서 성전의 권위를 압도하는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이 사건은 예수님의 이름을 ‘바리새 연방수사국’의 수배자 명단 맨 위에 올려놓았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기 시작했다.
Interview : 면담
이 사건이 있은 직후, 유대 관원이자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단순한 인간이라면 예수님이 베푸셨던 이적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으로 여기고 있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하나님나라를 보려거든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요 3:1-9). 이 땅에 존재하려면 육신으로 출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적으로 출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깊은 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께서는 외아들을 세상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내어주심으로써 사랑의 몫을 다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몫만 남아 있다. 우리의 몫은 그리스도를 인생의 구주로 믿고, 장차 천국에 들어갈 소망으로서 그분의 공적(功績)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선물을 받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죄 때문에 멸망하는 데서 나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Jacob’s Well : 야곱의 우물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북쪽으로 여행하다가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당도하여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곳에 잠시 멈추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니고데모는 상류 계층인 동료들과 다소 다른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만난 사람은 하류 계층의 동료들과도 아주 많이 다른,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이 육신의 갈증을 해소할 물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여인에게 사람의 영적 목마름을 완전히 해소해줄 수 있는 생수를 소개하셨다.
예수님은 수가 성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실 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상류층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영향력이 아래로 흐르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 마을에서 가장 형편없는 여인에게서 시작하여, 그녀가 철저하게 변화된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죄 많은 여인을 구원하셨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로 돌아가 우물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행위를 알고 있다고 전했을 때, 수가 성의 많은 남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 부정했던 여인의 간증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 4:5-39).
Kin : 친척
예수께서는 계속 북쪽으로 향해 정든 고향 나사렛에 당도하셨다. 예수님은 친족에게 가서 자신이 그들의 메시아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형제자매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인간적인 면에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형이나 오빠나 누나나 언니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면, 장난감과 신발을 언제나 가지런히 정돈하고 또 엄마 아빠가 부르면 즉시 달려온다면 아무리 혈육지간이라도 함께 살고 싶겠는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형제자매들이 먼저 못 박지 않은 것이 거의 기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셨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을 거부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야고보서의 기자)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이를 확신했을 것이다(고전 15:7).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나사렛’에서 가족과 친척과 더불어 믿음의 행보를 시작하기를 바라신다. 어쩌면 우리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 13:57)라는 주님의 말씀을 현실적으로 깨닫게 될는지 모른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을 구세주로 나타내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계속 가셨다.
Location : 장소
그 후에 예수님은 사역 장소를 바꾸어 가버나움(아마도 베드로의 집에서)에서 기거하셨다. 가버나움은 이후 3년 동안 예수님 사역의 본부가 되었다. 예수님은 잠깐씩 예루살렘에 올라가곤 하셨지만, 공생애 기간 대부분을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셨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과 비유의 80퍼센트가 가버나움을 근거지로 갈릴리에서 수행하신 것들이다.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기대가 증대됨에 따라 바리새인들의 반대 또한 거세졌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할 증거와 핑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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