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속량’이라고 부르는 것, 곧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속량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인이 악한 사람이고 아벨이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의 차이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둘 다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아벨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왔을 때 그의 행동에는 “하나님, 사실 제가 이 어린 양처럼 죽어야 마땅합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에는 그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늙은 아버지께 나아가 “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듯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만일 가인 당시에 주일 대예배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여기에 제 선물이 있습니다”라고 하며 꽃과 과일을 그분께 드렸을 것입니다. 그는 보혈과 희생과 십자가와 어린양을 몰랐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등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는 마음으로 그분께 어린양을 가지고 나아와 그것을 제단 위에 바치고 위를 쳐다보며 하나님께 “오, 하나님! 저는 사실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소를 짓고 제단에 불을 보내어 아벨의 제사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자신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것을 제단의 불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죄인들이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은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벨은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 두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죄를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는가? 내가 그분의 보혈로 나를 씻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기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해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의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온전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 히브리서 9장 11,12절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갈라디아서 4장 5,6절